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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탄으로 운하 건설을?

40년 전 창조경제 <학생과학>
등록 2014-05-24 15:49 수정 2020-05-03 04:27
최빛나 제공

최빛나 제공

임태훈은 책 에서 1960년대의 사회적 징후를 당시의 공상과학소설(SF) 서사와 이라는 잡지를 통해 들여다본다. 특히 1965년 창간된 을 통해 그는 당시의 냉전 반공주의와 국가주의의 이면으로 작동했던 과학 진흥이란 ‘사회적 프로그램’을 들여다본다.

맛나게 책을 읽고는 호기심이 발동해 헌책방을 뒤져보니 1968년판 하나가 나온다. 출간 당시 150원(지금의 1만5천원 정도 될까)인 이 잡지는 3만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었다. 어디서 찍었는지 명확하지 않은 ‘원자력 전시장’을 표지 사진으로 내건 이 잡지는, 당시의 시대상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지금은 공원화를 앞두고 있는 서울 마포의 당인리발전소에 대한 기사는 종종 산책을 가던 곳이기도 해서 더욱 시선을 끌었는데, 이 잡지에는 당시 209t에 달하는 대형 터빈을 당인리발전소로 옮기는 작전이 깨알같이 기록돼 있었다. 다리의 하중을 고민하며 50여 회의 ‘도강작전 공동회의’가 열렸다는 대목이나 이 터빈을 보고 싶어 도시락을 싸들고 쫓아오는 ‘터빈 오덕’과 모여드는 관중에 대한 대목에서는 난감함보다는 오히려 그 시대의 산업적 부흥에 대한 굿판 같은 신바람의 감정이 읽힌다.

각고의 전투 끝에 운송 기술의 한계를 극복한 부분에 이르면 아직 기계가 해내지 못하는 불가능을 인간의 지혜와 협동으로 이겨냈다는 자부심마저 보인다. 어쨌든 지금은 엄청난 상업지대로 바뀐 서울 홍익대 앞 걷고 싶은 거리가 그 시대엔 당인리발전소로 석탄을 나르던 철길이었다는 것까지 기억한다면, 하나의 기술적 대상을 둘러싼 역사는 단순히 인간만의 역사가 아니라는 생각에 동의하게 된다.

빠져서 읽다보니 다른 호들도 궁금해져 더 찾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다른 요원들까지 꼬여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된 마이크로필름까지 걸어놓고 돌려가며 재잘거리니 이런 덕후들은 또 무슨 덕후인가 싶다. 어쨌든 ‘운하 건설을 수소탄으로’ 하자는, 나름 무기의 평화적 이용(?)을 제안하는 듯한 미친 과학자적 상상부터 ‘소련의 유인 우주 비행은 가짜다!’라는 정치적 선전까지, 그 시대의 거대 담론이 벌인 냉전의 흔적이 페이지마다 자욱하다. 그 아래로는 온갖 양봉, 목공, 화장하는 법, 과학 우표, ‘과학이 본 비틀즈’라는 미묘한 음악평론 기사까지, 그야말로 ‘융합성’이 넘쳐난다.

‘등에 진 헬리콥터와 코드 없는 전화기로 날아다니며 사무를 보는’ 20년 뒤 상상도에 이르면 결국 이러한 SF적 상상력이 역사를 추동해온 힘이란 걸 부정할 수 없다. 잡지를 읽는 내내 지금의 창조경제 담론이 국가적 비전을 위해 설정되고 그 안에서 과학과 정보기술(IT)을 포함한 융합성을 강조하는 상황과 중첩된다.

40년의 시차를 두고 재진동하는 ‘사회적 프로그램’의 유사성이 흥미롭다. 어쨌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프로그램을 살펴보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일이다. 왜냐고? 당신의 삶은 그 안에서 프로그래밍되고 있으니까.

최빛나 청개구리제작소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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