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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의심하자

믿습니까?
등록 2014-05-17 14:01 수정 2020-05-03 04:27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사진기자단

앨빈 토플러는 무용지식을 설명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거의 2천 년 동안 자신의 사상으로 유럽 전역을 좌지우지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뱀장어가 무성생식 동물이며 강바닥 진흙 속에서 뱀과 짝짓기하여 나왔다고 믿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천재도, 인간이 비버의 고환을 의학적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비버들이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비버들은 포획되면 자신의 고환을 물어뜯어 적에게 물어뜯은 고환을 남겨놓는다고 단언했다. 남미 토착 식물이던 토마토가 16세기에 처음 유럽에 들어왔을 때는 상식을 가진 지식인들조차 토마토가 인간에게 독이 된다고 생각했다.”

코페르니쿠스가 16세기 중엽 의심을 품기 전까지 천동설은 확고한 과학이었고, 중세의 신학적 권위까지 더해져 불가침의 절대 진리로 믿어졌다. 다윈이 1859년 을 출간하기 전까지, 신이 모든 생물을 하나하나 창조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아니 의심해선 안 되는 진리였다.

간디는 “영국 없는 인도는 있을 수 없다”고 오랫동안 믿었던 사람이었다. 그가 인도의 실상을 깨닫고 차츰 영국 지배의 정당성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그 뒤로 어떤 일이 이어졌는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요컨대 우리는 똑똑한 자들의 권위도, 많은 사람들의 믿음도, 확고부동한 듯한 전제도, 오랜 세월의 관성도 의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모든 것들은 기존의 것을 의심하는 데서 비롯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지상파 뉴스를 의심해야 한다. 그들은 정부와 청와대의 말을 받아쓰기만 한다. 해경과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 언딘을 의심해야 한다. 그들은 유착돼 있고 무언가를 감추려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접하는 말들이 진실인지 괴담인지 항상 의심해야 한다. 대통령의 참담한 무능력을 보면서, 과장급 정도의 리더십도 없는 듯한 사람이 한 나라의 수장으로 앉아 있는 것이 괜찮은지 의심해야 한다. 후보 시절 TV토론에서 보였던 모습을 떠올리며 대통령이 정말로 멍청한 것은 아닐까 의심해야 한다. 아니 그 이전에, 국가정보원을 선거에 동원해 얻은 권력이 정당한지를 의심해야 한다. 아니 당장은 일단 대통령과 사진 찍은 아주머니가 유족인지 아닌지를 의심해야 한다. 아니 이 모든 것을 토대로, 이것이 도대체 국가인지를 의심해야 한다.

하아. 이것은 너무하다. 맹신을 경계하고 새로운 걸 배태하기 위한 의심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므로 의심만이 가득한 세상. 이것은 지옥과 같다. 하지만 적어도 이 지옥은, 언론과 정부의 발표를 의심 없이 믿던 그때보다는 더 건강할 것이다. 모든 것을 덮어두어 안으로만 썩어가던 이전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나을 것이다. 이 혼란을 양분으로, 새로운 것이 나타날 것이다. 그렇게 믿자, 하는 생각이, 이 나날을 견디는 나의 기진맥진한 아이디어다.

김하나 저자·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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