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의 광고들은 애국주의에 동원되기도 했다. 군인을 모델로 한 오른쪽 위 광고에 ‘축 난징함락. 이 건강이 승리한 것이다!’라는 카피가 보인다.민음사 제공
광고의 역할은 단순히 물품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상품을 소유하지 못함을 사람들이 문제로 느끼게 만드는” 역할을 광고는 맡는다. 소비자와 욕구를 창조해내야 하는 것이다. 상품의 세계를 신화화하고 계층 상승에 대한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지금부터 100여 년 전, 한국에 ‘소비자’가 처음 생겨날 때부터 그랬다. 권창규의 (민음사 펴냄)는 대한제국과 식민지 시기에 한국의 최초 소비자의 욕망을 읽어낸다. 국문학 전공자인 저자가 ‘자본주의의 시’라고 일컫는 광고를 중심에 두고 박태원, 김기림, 이태준, 김남천 등의 시와 소설, 평론, 그리고 신문과 잡지글을 섭렵해 한국 소비사회의 기원을 추적했다.
소비가 삶의 중심으로 부상한 근대저자는 출세, 교양, 건강, 성, 애국 등 다섯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근대 이전에도 이런 욕망은 존재했다. 하지만 신분사회에 갇혀 출세의 길은 특정 계급에만 허용됐고 욕망도 자연스레 통제됐다. 조선시대 후기부터 요동치던 신분질서가 강력한 자본의 침입으로 무너지면서 새로운 계급이 등장했다. 소비력에 따라 재편된 새로운 위계질서 속으로 사람들이 급속히 편입되고 상품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나갔다.
이때부터 부를 축적하는 것, 사회 변화에 걸맞은 기능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누구나 양반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새 시대의 모토를 달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스스로 상품화할 수 있는 생산력을 기르고, 또 상품을 소비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 근대인의 임무”가 됐다. 사람들은 ‘학력 자본’과 같은 ‘문화 자본’을 비롯해 ‘육체 자본’, ‘경제 자본’을 개발해갔다. 광고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러한 가치들을 삶의 표준으로 제시하며 소비로써,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획득할 수 있다고 유혹했다. “상품도, 상품 소비도 충분히 낯설었을 때 광고는 새로운 가부장으로 등장해 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의식주를 공급하고 삶의 윤리와 철학까지 가르쳤다.”
그 결과 사회·문화·경제의 변화가 상품과 광고를 통해 이뤄져갔다. 저자는 상품 소비가 삶의 중심으로 부상한 근대의 일상에 현미경을 들이댔다. 오늘날보다는 촌스럽고 적나라하지만 좀더 단순했던 태초의 한국 소비사회를 되짚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컨대 ‘입신의 무기’로 떠오른 영어 광고(도쿄 소재 이노우 통신 영어 학원)를 보자. “청소년 제군! 초여름은 입신의 무기, 영어를 정복하라! 석수쟁이 아들로 총리대신이 되는 실력의 세상인즉, 더욱이 ‘영어’를 아는 것이야말로 입신의 제일 무기이다.”( 1936년 6월30일) 광고는 소비의 욕망과 꿈을 팔고, 많은 피지배 계급은 광고의 ‘말’에 귀기울이게 됐다.
성문화가 양지로 나오는 데 한몫‘누구나 건강해질 수 있다’는 신화도 약 광고로 만들어졌다. 약은 사회적, 국가적인 차원의 구세주로 그려졌다. 상품은 거대하게, 사람들은 작고 빼곡하게 그려넣어 상품은 구원자, 사람들은 구원받아야 할 순응적인 무리로 표현했다. 성문화가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는 데도 광고가 한몫했다. 성 질환 치료제가 대표적이다. “생식 기능을 끼고 도는 인생의 희비극! 환락은 짧고 애수는 길다.”(1929) ‘뒤처리는 걱정하지 말고 맘껏 즐겨라, 젊음을 만끽하라’라는 지침인 셈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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