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주의자들은 매일, 행복을 미루어놓는다. TV 류에 소개될 만한 대단한 성취를 이룬 사람이 아니라도 그렇다. 성취를 많이 해서 성취주의자가 아니라 성취추구형 인간이라 성취주의자인 것이다. 이것만 끝내놓고 나면, 저것만 일단 해놓고 나면, 비로소 내 삶이 시작될 것이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면 ‘본격적인’ 인생이 그때부터 열릴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입사하면 목표는 금방 수정된다. 더 잘나가는 부서로 발령을 받는다면, 이번에 팀장만 단다면. 테마를 바꾸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애가 어린이집만 가면, 대학만 가면, 어디든 취직만 되면, 결혼만 시키면. 그러는 사이 인생은 무려 20년을, 아니 어쩌면 30~40년을 뭔가를 기다리며 준비만 하며 산 셈이 됐다. 그렇다면 40년 넘게 기다려온 내 ‘본격’ 인생은 도대체 언제 열린다는 것인지?
은 그래서 매우 감동적이고 새로웠다. 이것은 예상과 달리, 에이즈 환자가 얼마 안 남은 여생을 돌아보며 불현듯 깊은 깨달음을 얻는 영화도 평생을 증오하던 동성애자들에게 갑자기 마음을 여는 영화도 아니고, 이해심 없이 살아온 인생을 참회하는 영화는 더욱 아니었다. 주인공 론은 사형선고를 받고 나서도 그냥 하루하루를 산다. 죽음을 앞두었다고 해서 기약 없이 절망하지도 않지만, 느닷없이 착해지지도 않는다. 그냥 살던 대로 매일매일 산다. 그리고 단 하루도 대충 살지 않는다. 그렇다고 늘 대(對)에이즈 투쟁만 하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사람들과 술 마시고 싸우고 로데오를 즐기고, 마약도 완전히 끊지는 않고, 그냥 먹는 거나 조심하는 정도다. 지금까지 전기배관공으로 열심히 밥벌이했듯 이제는 동일한 노력으로 자기 병을 연구하고 사업도 벌이고 사기도 치고 이웃도 돕고 그 와중에 사랑에도 빠지면서, “에이즈 걸린 말년의 삶”이라는 삶을 그저 산다. 살아내는 것도 아니고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사는 것. 아무것도 미루거나 망설이지 않고.
내가 한때 상당히 뚱뚱하던 시절, 살 뺀 다음에 살 거라며 옷 안 사는 나를 보고 어머니께서 그러셨다. 뚱뚱한 걸 인정하고 예쁜 뚱뚱이로 다니는 게 좋지 않겠냐고. 임신 중 겨우 몇 달인데 뭐, 하고 대충 사는 내게 또 그러셨다. 이건 임시야,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보자면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평생이 임시의 연속이고, 그러면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구질구질하게 살았던 기억밖에 없어 안타까울 거라고. 취준생에게도 임산부에게도 실직 가족에게도, 단 한순간의 삶도 임시가 아니다. 어떻게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인생에서, 론에게도 우리에게도, 행복이란 삶의 방식이다.
오은하 회사원·영화진흥위원회 필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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