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TV 드라마에선가, 직장생활을 나 병법서에 비유한 것은 아주 적절했다. 어디서나 합종연횡이 일어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며, 오늘의 절친은 내일의 원수가 된다. 영원한 아군도 적군도 없기 때문에 어디서건 험담을 지나치게 세게 하지 않고 언제나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두며, 특히 요즘 같은 디지털 세상에서는 메신저에서도 실시간 자체 검열을 거친 표현만 쓰는 게 현명할 것이다.
그런데 실은 직장생활뿐이랴. 동네 운동 모임에서도 아이 친구 엄마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고, 인생 자체가 다 그런지도 모른다. 만나면 순식간에 전체적인 조직도가 그려지고 지엽적인 단짝들이 생겨난다. 누가 만만한지 그리고 그 사람의 약점은 어딘지를 보고 면도날 같은 틈으로도 파고들며 누구랑 친해야 유리할지에 따라 행로를 정하는데, 언제나 다들 바쁘게 머리를 굴리지만 많은 일들이 짐작과는 다르고 결국 큰 그림은 잔머리대로 되지 않는 데 또 삶의 묘미가 있다.
은 도무지 단 한순간도 마음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이해관계의 미로 같은 인생 단면을 그린다. 얽혀 있는 것은 경제적 이해관계만이 아니다. 사소하게 다친 감정에 대한 서운함, 그리고 랜덤으로 작동하는 성적 욕망까지, 다 복잡한 씨줄과 날줄을 이루며 가짓수 곱하기 사람 수 곱하기, 환경 변화들까지 변수로 해서, 잠시도 안심하거나 앞을 예상할 수 없다. 애써서 머리를 짜 만든 계획은 어디선가 아주 사소하고 우습기까지 한 계기들에 걸려 어긋나고, 크고 작은 배신이 아무렇지 않게 난무하며, 기발하다고 무릎 치며 고안한 덫에 스스로 갇히게 되는, 어쩌면 가만히 있었느니만도 못한 결과들이 꼬리를 문다.
그러나 이 진흙탕 같은 아레나에서 그래도 미소짓게 만드는 한 가닥 구원은, 결국엔 불가사의하다고밖엔 말할 수 없는 남녀 간의 끌림이다. 울룩불룩 늘어진 배도 그냥 그 사람의 빼놓을 수 없는 일부처럼 친근하게 받아들여지고, 비겁해 보일 때도 연민이 앞서며 결국은 인생을 함께하게 만드는 그런 관계. 가짜 머리 뭉치를 붙이고 위장하듯 공들여 그 위에 머리카락을 널어놓은 비루한 헤어스타일이 면전에서의 모욕과 함께 헤집어진 자기 남자에게, 같이 있어 창피하다는 짜증도 내가 어쩌다 저 사람 짝이 됐나 하는 한탄도 없이 밝게 웃으며 행운을 기원해주는 시드니(에이미 애덤스)의 호텔 장면은, 어째서 이 세상이 이전투구판으로나마 계속 이어질 수 있는지 비밀의 열쇠 한 가지를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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