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병곤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인 십수 년 전 방과 후 ‘노예’ 노동을 하며 아비와 함께 쌓은 초창기 돌담. 초봄 금낭화(며느리밥풀꽃)가 돌담을 배경으로 피어나고 있다.
나는 돌담을 사랑한다. 무척, 매우 그리고 엄청 사랑한다. 덕수궁 돌담도 좋지만 그보다는 구멍 숭숭 난 검은 현무암으로 푸른 초지를 배경으로 끝없이 쌓아놓은 제주도 돌담이나 영호남 오래된 마을에 세월의 무게를 켜켜이 이고 서 있는 돌담이 비할 나위 없이 더 좋다. 그래서 나는 아무 주저함 없이 이곳으로 이사 온 뒤 14년간 거의 매해 조금씩 돌담을 쌓아왔다. 돌담으로 경계를 설정하고, 공간을 분할해 그에 걸맞은 기능을 부여하고, 바람막이를 하고, 연못을 만들고, 둔덕의 흙 밀림을 방지하고, 지난 일요일에는 반지하 온실의 벽면을 치장했다.
돌담은 무엇보다 질리지 않는 고고한 아름다움을 준다. 시시껄렁한 미학적 모더니티는 돌담 근처에도 못 온다. 더 좋은 것은 고고하면서도 주변 무엇과도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황토나 소나무와 제격이지만 초봄 그 아래 핀 수선화, 그리고 한여름 돌담을 타고 오르는 능소화와도 잘 어울린다. 심지어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알록달록 ‘공무원표’ 마을회관과도 어울린다.
아름다움에 더해 돌담은 튼튼하다. 제대로 한번 쌓아놓기만 하면 수선이 필요 없다. 튼튼한 만큼 세월의 더께로 스스로를 치장하니 아름다움과 튼튼함이 서로서로를 보듬어 잘 산 인생처럼 융숭하니 늙어간다. 돌담은 세세연년 공짜인 중력의 존재를 가장 잘 활용한 건축기법의 하나라는 점에서 매우 과학적이고, 우리네 삶터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건축자재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실용적일 수 없다. 아울러 돌담을 쌓다보면 우리는 저절로 철학적 사유에 물드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 무거운 돌로 쌓은 고대국가의 건축물이나 성곽을 생각하면 민초의 애환과 노예제 생산양식의 역사적 불가피성이 떠오르지만, 동시에 그 어떤 못난 돌도 돌담에는 다 쓸모 있다는 상생과 조화의 미를 터득하게 된다. (사람살이도 다를 바 없겠지만, 그래도 그중 고르라면 가장 쓸모없는 돌은 반질반질 닳아빠진 돌이다.) 서둘러 쌓다보면 기어이 일을 망친다는 깨달음에서 돌담 쌓기는 느림의 미학을 노동으로 구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돌담 예찬에 쉽게 현혹돼 논밭과 들판, 그리고 정원으로 나선 이들은 십중팔구 이내 나의 예찬에 거친 불평을 고명으로 얹어 답하기 쉬울 것이다. ‘누가 좋은 것 모르나! 한번 해봐라. 손목 새큰대고 허리 휘고 장딴지 후들댈 거다.’ 탓하기 힘든 것이, 돌담은 좋은 만큼 쌓기 힘들기 때문이다. 돌담을 쌓다보면 깨닫는 평범한 진실이 두 가지 있는데, 그 하나는 돌이 엄청 무겁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돌담을 쌓으려면 그 무거운 돌이 엄청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돌담 쌓을 돌을 모으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곧 깨닫게 된다. 지천일 것 같은데 막상 모으면 그렇게 더딜 수가 없다. 모았다 치더라도 작업현장으로 옮기는 일에 과거 내가 그러했듯이 손수레를 이용한다면, 돌담 쌓기는 고난을 즐거움으로 삼아야만 가능한 거의 종교적 수행 과정에 필적한다.
이 정도면 독자들께서 지레 겁먹고 포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안심하시라. 나의 경험을 타산지석 삼아 느릿느릿, 그러나 쉬지 않고 하다보면 곧 “눈만큼 게으른 것 없고 손만큼 부지런한 것 없다”는 고개 너머 고모님의 훈수가 제대로 된 말임을 이내 깨닫게 될 것이며, 자연과 더불어 변해가는 돌담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게 될 것이다. 오히려 조심할 것은 돌담 쌓기가 약간의 중독성이 있어 한번 시작하면 자꾸 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일이다. 얇은 책을 한 권 쓸 정도의 이야깃거리가 있으나 이번 글은 대충 바람만 잡고 다음번 글에 최대한 축약해 어떤 돌을 어디서 구해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에 대한 실용적 방안들에 관한 실사구시 이야기를 잇기로 한다. 다만 글을 맺기 전 노파심으로 덧댄다. 여기서 돌담이란 거대한 굴착기가 로봇 팔 같은 집게손으로 무지막지하게 큰 석재를 쿵쾅쿵쾅 높게 쌓아올리는 석축이 아니라 까치발 하면 안이 들여다보일락 말락 하는 담장 수준의 ‘핸드메이드’(handmade)표 돌담 쌓기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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