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게 지독히 재미없으면서 심지어는 몹시 길기까지 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인생이 재미없는 이유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라면 제발 고마울 것이다. 걱정스런 일들이 참 절묘하게도 꼬리를 물고 생긴다. 이렇게 막아놓고 한숨을 내쉬면 또 저쪽을 막아야 하는데, 간신히 수습해봐야 본전이다. 고작 현상 유지를 위해 이렇게까지 안간힘을 써야 하다니? 숨가쁜 발장구로 점철된 한 단락 한 단락은 또 끝없이 반복된다. 매 단락은 변화무쌍하지만 그 단락들이 모여 만드는 패턴은 단조롭기 이를 데 없는 삶. 급기야는 오로지 가라앉지 않기 위해 발을 미친 듯이 놀려야 하는 시점을 맞는다. 온몸을 던져 삶을 사는 이유가 단지, 죽지 않기 위해서라니.
미국 뉴욕의 한 포크가수 르윈의 인생도 그러하다. 하루하루 노래할 곳을 찾는 것이 힘겹고 오늘은 또 어디서 자야 하나를 매일 새롭게 계획해야 한다. 허기지다보니 옆 사람의 시리얼 한 그릇 마지막 우유 한 모금 삼키는 소리까지 귀기울여지고, 얼음구덩이를 잘못 디뎌 차갑게 젖은 발을 말려줄 여벌의 양말 한 켤레도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매일의 일상으로 당연하다는 듯이 펼쳐진다. 한심한 일상을 뚫고 들려오는 특이한 소식이란 더 암담한 종류들이다. 친구의 여자친구가 임신했는데 그 아이의 아빠가 친군지 난지 몰라 곤란하다든가, 이미 낙태한 줄 알았던 전 애인이 실은 내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으며, 연로한 아버지는 치매로 이제 대소변을 가릴 수 없다는 등. 이런 인생을 돌파해보려 모처럼 희망을 품고 시카고로 무대를 옮겨보지만 기다리는 것은 동일한 시궁창의 다른 동네 버전일 뿐이다. 음악이고 뭐고 깨끗이 체념하고 옛날로 돌아가 배나 타자. 하지만 거기도 삶의 맨 밑바닥은 아니었다. 마지막 자존심까지 버리며 내민 카드조차 나를 비웃고 만다. 멍텅구리 배 따위를 탈 자격조차 나는 없는 것이었다. 아아, 사람은 대체 어디까지 영락할 수 있는가.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삶의 마법은 여기부터다. 참으로 묘하게도, 이 끝없는 반복의 쓰레기더미 속에 어떤 균열이 생기면서 거기에 이전과 똑같지 않은, 어떤 다른 느낌과 시선이 스며든다. 모든 반복이 실은 동일한 반복은 아니었던 걸까. 언제부턴가 르윈은 자살로 삶을 마감한 듀오 파트너의 파트를 자신이 부를 수 있게 되고, 홧김에 비열하게 싸움을 걸었던 친구들과도 화해하게 되며, 단 한 푼어치도 나아진 것은 없지만 노래로 자신과 관객을 어루만질 수 있게 된다. 시궁창의 어디쯤에서 마법이 비롯된 것일까? 일상의 반복 자체가 마법의 힘을 가진 것일까? 인생은 아무리 비루하게라도 살아 숨 쉬는 한, 폐쇄회로는 아니라는 얘기를 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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