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한 세기만에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예술로 떠올랐고, ‘거장’이라 불릴 만한 수많은 영화예술인들을 배출했다. 높은 제작 비용과 세세한 분업 체계 덕분에 영화는 ‘어느 누군가의 작품’이 되기 어려울 것 같지만, 거장들은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해 ‘작가’가 됐다. 이들은 때로 자서전처럼 직접 저술한 책도 남겨, 자신이 만든 영화와 함께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러시아의 위대한 영화감독으로 추앙받는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분도·1995)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런 책들을 통해 거장들은 자신의 영화 철학을 진지하게 해설하기도, 영화 뒷이야기를 기록하기도, 작품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덧붙이기도 한다.
어쩌면 ‘거장이 만든 난해한 예술영화 보는 것도 힘겨운데, 빡빡한 글로 쓴 그들의 자서전까지 보라고?’ 생각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분들도 등을 만든 일본의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가 쓴 자서전 을 본다면 생각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예순여덟의 나이에 자신의 출생에서부터 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기까지를 담담한 회상으로 더듬어 내려간 회고담이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만들었든 서양 고전에서 착안했든, 현대극이든 시대극이든, 그 어떤 이야기와 형식에서도 보는 이의 보편타당한 공감을 이끌어냈던 구로사와는, 자서전에서도 읽는 이로 하여금 한 편의 감동적이고 재밌는 영화를 보듯 그의 삶에 빠져들게 만든다.
인생의 영욕을 모두 지낸 노인의 회상 속에는 시종일관 인간에 대한 따스한 애정이 서려 있다. 소학교 시절을 ‘울보’ 동료로 함께했던 소설가 친구 우에쿠사, 성장이 더딘 어린이였던 자신을 북돋아준 소학교 시절의 은사, 자신을 영화 세계로 이끈 멘토와 같은 존재였으나 서른을 넘기기 전에 자살로 세상을 떠난 형, 스승 같은 존재였던 야마모토 가지로 감독 등 자신의 삶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인생 속에 등장한 모든 사람의 모습을 솔직하면서도 섬세한 서술로 전달한다. 의 시나리오, 촬영 작업의 어려웠던 점들을 구체적으로 적어놓은 일화들을 읽으면서는, ‘천사처럼 담대하게, 악마처럼 집요하게’라는 그의 영화 철학이 어떤 것인지 되새기게 된다.
이 책은 1994년에 이미 (민음사)로 출간된 바 있으나, 이번에 새로운 번역으로 다듬어져 다시 나왔다. 구로사와와 비슷하게 자기 삶을 한 편의 영화처럼 친근하게 책으로 써냈던 또 다른 감독으로는 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출신의 페데리코 펠리니를 꼽을 수 있다. 펠리니의 자서전도 1998년 (다보문화사)란 제목으로 출간됐는데, 이 역시 새롭게 다듬어져 나왔으면 좋겠다.
최원형 기자 오피니언부 circl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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