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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된 사회에서 사회주의가 도래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은, 20세기에 한해서 본다면 굉장히 객쩍은 예측이었다. 지난 세기 자신의 국기를 붉은색으로 갈아치운 대다수 나라들은 후후발 자본주의국가(러시아)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제3세계의 식민지(북한·베트남·캄보디아 등)였다. 산업혁명의 발원지 영국이나 사회주의자들의 근거지 프랑스는커녕 마르크스가 사회주의 혁명의 예상지로 점쳤던 미국 같은 제1세계에서 ‘낫과 망치’는 자본주의 명줄을 끊어내지 못했다.
일본을 비롯한 제국주의의 발톱 아래 신음하던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아편으로 병들고 내전으로 피폐해진 이 ‘늙은 용’이 1949년 10월1일 마침내 사회주의국가가 됐을 때, 그들의 당면 목표는 생산관계의 모순을 혁파하는 일이 아니라, 생산력을 높이는 일이었다. 그러나 빈곤한 국가는 생산력 증대를 위해 가용할 자본이 없었다. 농민을 주된 대상으로 삼아 자본주의와 비슷한 형태로 원시적 자본 축적이 이뤄진 까닭이다. 다만 자본주의와 다른 점은 부르주아가 아닌 국가가 수탈을 대신했다는 점. 중국의 대약진운동이나 소련의 집단농장, 북한의 천리마운동 등 근대 자본주의를 온전히 이행하지 못한 나라에서의 사회주의는, 의지에 기반한 주의주의적 운동을 통해 생산력의 발전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중국은 문화대혁명의 10년 광기를 더 탕진하고 나서야 본격적인 의미의 경제발전이 가능했다. 그 가운데에 1979년 출범한 덩샤오핑 정권이 있었다. 에즈라 보걸 미국 하버드대학 명예교수의 (심규호·유소영 옮김, 민음사 펴냄)은, 노쇠한 용에서 미국의 어깨에 손을 올릴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된 중국의 건설자, 덩샤오핑의 생애를 담은 책이다.
1904년 혼돈의 근현대 교체기에 태어난 덩샤오핑은 16살에 떠난 프랑스 유학 시절 마르크스주의를 접한 뒤 평생을 공산주의자로 살았다. 견결한 마르크스주의자였지만 가난한 농업국가에서의 사회주의(혁명)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았다는 점에서 그는 마오와 같고도 다른 인물이었다. 항일전쟁, 국공 내전, 대장정, 문화혁명 등 중국 현대사의 복판에서 갖은 부침을 겪은 그는, 70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의 시대를 열 수 있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요약되는 과감한 개방화와 급속한 도시화를 통해, 덩은 마오의 중국을 자신의 중국으로 만들었다.
특히 이 책은 덩의 개인사를 넘어 그가 어떻게 중국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전체 분량의 3분의 2를 할애해 밝히고 있다. 동아시아 전문가로 한때 미국 중앙정보국(CIA) 동아시아 분석관으로 일하기도 한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덩샤오핑의 가족을 비롯해 장쩌민·황화 등 광범위한 인물들과 수차례 인터뷰를 거쳤다. 결국 덩샤오핑이라는 ‘작은 거인’을 이해하는 일은, 그가 만들어낸 중국을 이해하는 첩경인 셈이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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