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을 탔다. 출근길 스마트폰으로 보던 드라마를 어디까지 봤더라? TV를 켠다. 사고를 겪은 뒤 죽을 사람을 미리 알아보는 능력을 얻게 된 주인공이 자신의 감각을 이용해 사람들을 구한 뒤 칭송을 듣자 점차 욕망이 커지며 비뚤어지기 시작하는데…. 한 회를 보는 사이 지하철은 다섯 정거장을 달렸다. 드라마는 회당 10분이 채 되지 않는다. 환승역에 닿았다. 화면을 잠시 멈추고 다음 역을, 다음 회를 향해 종종걸음을 걷는다.
9일 만에 유례없는 누적 조회 수 200만 회네이버는 지난 1월6일 웹드라마 1부 5회를 전체 동시 공개했다. 평범한 고등학생 안대용(김동준)은 좋아하는 여학생 주희경(선주아)에게 옥상에서 고백하던 중에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다. 다행히 별 후유증 없이 무사히 퇴원하는데, 퇴원 당일부터 사람들 얼굴이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얼굴이 새하얗고 눈이 유난히 붉은 사람이 있다. 기이한 얼굴의 사람은 곧 죽음의 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 대용은 어리둥절해하며 눈에 띄는 대로 눈이 붉은 사람들을 쫓아가본다. 자신의 능력을 확인한 대용은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들을 구하며 영웅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추어올릴수록 우쭐해지고 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그러던 중 같은 능력을 가졌지만 그것을 악용하는 김준구(김근형)를 만난다. 김준구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다. 대용은 김준구에 의해 자신에게 닥칠 불안한 미래를 모른 채 계속해서 사람들을 구한다. 여자친구 희경과 첫 키스를 하는 순간, 희경도 대용과 같은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 밝혀지며 1부가 끝난다. 1부가 끝나고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은 네이버 TV캐스트에 공개된 지 9일 만에 누적 조회 수 200만 회를 돌파했다. 웹드라마에서 유례없는 일이다. 드라마 방영 뒤 웹툰 조회 수에도 변동이 생겼다. 주간 페이지뷰(인터넷 이용자가 특정 사이트에서 본 페이지 수)가 웹툰 종결 이후 평소 페이지뷰에 비해 13배 상승했다. 연재 진행 기간 평균 페이지뷰의 90%에 육박한 수치로, 연재 당시와 다름없는 반응을 다시 끌어낸 셈이다.
이제 막 시장에 진입한 웹드라마는 편성부터 방송 분량까지 어떤 것도 아직 뚜렷하게 정해진 것이 없다. 여전히 실험을 진행 중이다. 등 지난해 모바일과 온라인 사이트에서 호응을 얻은 웹드라마들은 연애·취업 등 10~30대의 고민을 담은 이야기가 주효했다. 스마트폰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층을 타기팅하며 시장의 반응을 살폈다. 편성은 기존 TV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일주일에 1~2회 분량을 공개해 익숙한 방식을 취했다. 은 편성 방식을 달리해 1부가 끝나고 일주일 뒤 1월13일에 2부 6회를 한꺼번에 업로드했다.
짧은 분량 여러 회를 동시에 편성하는 방식은 미국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웹드라마 (House of Cards)를 따른 것이다. 는 웹드라마의 시장성을 증명한 사례로 꼽히곤 한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장르·이야기·배우·감독을 분석해 제작된 드라마는, 2013년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서 9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감독상·촬영상·캐스팅상 등 총 3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에미상은 2007년부터 웹드라마가 참가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했지만, 실제 웹드라마가 수상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
온라인서 콘텐츠 소비하는 패턴 분석해 론칭시청자 수동형인 TV에서 온라인, 모바일 기기 등으로 서비스 제공 매체가 변동하면서 시청자에게 ‘본방 사수’ 개념은 옅어지고 ‘원하는 시간에 보기’ ‘이어보기’가 더 중요해졌다. CJ E&M이 제작한 4부작 모바일 드라마 도 지난해 12월19일 1·2회를 한꺼번에 공개했다. CJ E&M 안미현 차장은 “온라인에서 사용자들의 콘텐츠 소비 패턴을 분석해 드라마를 론칭했다”고 밝혔다. 주말에 콘텐츠 소비가 많은 점, 보고 재미있으면 바로 다음 회를 찾아서 보고 이동 중이나 혼자 독립된 공간에서 1인 시청하는 경향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회당 20분 분량으로 목요일 저녁 1·2회를 동시에 방영했다.
은 모바일콘텐츠마켓인 카카오페이지와 온라인 베이스인 티빙, 유튜브에서 먼저 공개됐다. 3·4회는 카카오페이지에만 독점 공개했고 차후 온라인 플랫폼, 그다음으로 TV에 전 회 송출했다. 시차를 두고 영상을 내보낼 수 있는 모든 플랫폼에 실험해본 셈이다. 그중에서도 모바일 기반인 카카오페이지를 메인 플랫폼으로 삼은 점은 주목할 만하다. 카카오페이지에서는 웹툰이나 에세이, 소설 등 만화와 텍스트는 유통되고 있었지만 영상은 이 처음이었다. 안미현 차장에 따르면 “모바일에서 공개됐을 때 카카오페이지 신규 이용자가 평소보다 3배 정도 늘었다”고 한다. 더불어 “최단시간에 카카오페이지 내 베스트 콘텐츠 1위에 올라가 가능성을 점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다음 또한 를 다음의 모바일 콘텐츠 서비스인 스토리볼과 온라인 기반 다음TV팟을 통해 동시 방영했다. 지난해 12월 종영한 드라마는 누적 조회 수 600만 회를 기록했다. 또한 회당 10여 분 분량으로 스마트폰을 주로 사용하는 20~30대를 타깃으로 제작된 드라마다. 총 12부작인 은 일주일에 2편씩, 자정에 업로드해 늦은 시간 휴식을 취하며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용자와 아침 출근·등교 시간을 이용해 모바일 기기를 이용하는 이들을 공략했다. 다음 관계자는 모바일 사용자들의 이용 경향에 대해 다음과 같은 분석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많은 테스트를 해봤는데, 사용자들이 2분이 넘어가는 영상을 조금 힘들어한다는 통계가 잡혔다. 모바일 기기로 무엇 하나를 꾸준히 보는 일이 쉬운 것이 아니어서 5~10분 정도의 분량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한편 “접속 시간을 봤을 때, 출퇴근 시간이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자기 전인 밤 10~12시에 접속률이 높다. 짬 날 때, 혼자 있을 때 주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음 스토리볼 프로젝트 최문희 팀장은 “TV냐 웹이냐 모바일이냐에 관계없이 상황에 따라 접속 가능한 디바이스로 내가 원하는 때에 콘텐츠를 즐기는 시대가 왔다. 특히 모바일은 개인의 접근성이 가장 높은 디바이스로, 드라마를 비롯한 콘텐츠를 모바일로 즐기는 시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웹소설 시장 꾸준한 성장세 보여웹으로 이사 간 드라마들 때문에 거실에 놓인 TV가 조금 한가해졌다면, 웹소설이 유행하며 로맨스·판타지·무협 등 장르소설 마니아들의 책장도 조금 헐렁해졌다. 출판시장에서 비교적 언더그라운드에 속해 있던 장르소설이 온라인으로 옮겨와 선전 중이다. NHN은 지난해 초 ‘네이버 웹소설’ 간판을 내걸고 장르소설 연재를 시작했다. 예스24 또한 지난해 5월부터 ‘e연재’ 사이트를 개설하고 웹소설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장르물이 웹에서 특히 선전하는 이유에 대해 예스24 김정희 e연재팀장은 “장르물의 특성은 새로운 이야기가 시리즈별로 계속 업데이트된다는 점, 가격이 기존 종이책보다 저렴하다는 점인데, 이러한 특성이 인터넷 속성과 잘 맞아떨어진다. 시장이 자연스레 인터넷 연재와 e북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옮겨오게 되었다”고 밝혔다. 예스24 이민정 전자책 담당 MD는 “웹툰을 통해 온라인 플랫폼에 익숙해진 독자가 많아졌다. 스마트폰의 보급 등 예전보다 온라인 플랫폼 자체도 발전해 더 쉽고 편하게 독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점도 웹소설 플랫폼을 성장하게 한 배경”이라고 설명하며 “블로거들의 칼럼 등 장르소설 외에도 웹으로 다양한 분야가 연재되고 있으며, 이들 또한 모바일 플랫폼으로 이동이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웹소설도 웹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처럼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는 분량으로 제공된다. 웹소설 한 회를 읽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5~10분 정도다. 더불어 로그인을 하거나 별도의 뷰어나 프로그램을 설치할 필요가 없고 모바일 기기만 있다면 언제든 접근 가능한 편리성 때문에 웹소설 시장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인다. 예스24 e연재의 경우 지난해 5월부터 서비스를 시작해 출시 이후 최근 3개월까지 전월 대비 월평균 200% 이상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네이버는 지난 1월15일 웹소설 서비스 출시 1년을 돌이켜봤더니, 하루 평균 300여 개 작품이 게재되고 정식 연재 작가 61명과 아마추어 작가 6만2천여 명이 작품을 선보이는 등 콘텐츠 플랫폼으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야기는 전통 매체에서 PC 등 온라인 접속이 가능한 기기로, 다시 이동성을 지닌 모바일로 옮겨가는 경향을 보인다. 예스24 e연재의 경우 PC보다 모바일로 접속하는 사용자가 30% 이상 더 많다고 한다. 네이버의 영상 콘텐츠 서비스인 네이버 TV캐스트 또한 모바일과 PC가 6:4 정도의 비율로 모바일에서의 접속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CJ E&M과 다음은 웹드라마 메인 플랫폼으로 모바일 기반의 카카오페이지와 스토리볼을 채택했다.
더 이상 TV를 TV로 보지 않는 시대정보기술(IT) 전문가 포럼 커넥팅랩이 쓴 는 ‘TV 3.0 시대’를 예견했다. TV 1.0이 아날로그 방송을 수신하는 전통 TV의 시대였다면, TV 2.0은 TV가 인터넷 등 디지털과 연결되는 시대, TV 3.0은 TV에 모바일이 접목되는 앞으로의 시대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TV 3.0 시대는 “더 이상 TV를 TV로 보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4년은 “TV 2.0 시대가 심화됨과 동시에 TV 3.0 시대가 보편화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도 썼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2014 문화예술 트렌드 분석·전망’ 보고서에서 10분 안팎의 자투리 시간에 소비하는 콘텐츠인 ‘스낵컬처’가 기반을 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야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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