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나는 미디어 플랫폼과 기자·에디터, 혹은 비평가의 위치에 대해 꽤 깊이 고민한 것 같다. 일단은 내가 미디어 환경에 민감한 프리랜서 글쟁이기 때문이고 한편으론 1999년에 오픈한 ‘weiv’란 음악 웹진 운영에 10년 이상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10년간 모바일 콘텐츠 업체, 포털 사이트,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라디오 방송국,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웹진 등에서 직장 생활을 했던 점이나, 회사를 그만둔 뒤에도 온라인 음악 서비스나 오프라인 매거진의 창간 작업에 참여했던 일 역시 이런 관심을 유지하게 한 동기였다. 이 분야의 전문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콘텐츠’에 관해서라면 몇 마디 거들 만한 경험은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음악평론가보다는 프리랜서 글쟁이 혹은 기획자의 관점에서 미디어 플랫폼과 그 종사자들의 역할 변화를 얘기해보려고 한다.
대안 매체 실험이 가능한 환경2014년 1월1일, 정보기술(IT) 전문지 에는 ‘2013년, 블로터닷넷의 7대 거짓말’이란 기사가 업데이트되었다. 여기에는 지난해 이 보도한 IT 뉴스들 중 유야무야된 프로젝트가 언급됐는데, 엄밀히 말해 매체의 거짓말이 아닌 약속을 지키지 않은 기업에 대한 비판적 기사였다. 그럼에도 이를 보도한 매체가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고백이 인상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진 이 기사는 주로 ‘이래서 믿고 본다’거나 ‘다른 언론사에 비해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은 전통적 의미의 언론사는 아니다. 블로터(BLOTER)란 블로거(Blogger)와 리포터(Reporter)를 더한 개념이고, 은 블로거의 분석력과 리포터의 취재력이 결합된 저널리즘을 지향한다. 그 점에서 흔히 ‘기자’를 혐오하는 분위기는 최근 몇 년 동안 확실히 높아진 것 같다. 언론의 역할, 기자의 태도, 미디어의 위치 등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이 매회 등장한 미국 드라마 의 인기라든가, 대담과 인터뷰, 유튜브를 활용한 시청자 참여 등을 시도하는 JTBC 의 인기를 그 방증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일단 나부터도 분명히 ‘다른 뉴스’를 원한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단지 최근의 언론통제, 조직적이고 미시적인 압박으로 방향을 잃은 언론에 대한 대중적 반작용 때문일까.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 한국의 미디어 환경은 2002년 월드컵과 대선을 기점으로 포털 뉴스 중심으로 전환되다시피 했다. 2000년에 창간한 인터넷 신문 의 성장에도 포털 사이트는 크게 기여했다. 와 기사가 동등하게 취급되던 것을 기억해보자. 하지만 포털을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행태는 2004년 스포츠 신문들의 대규모 계약 해지 사태를 야기하기도 했다. 덕분에 인터넷 연예 신문들이 등장해 빠르게 성장했다. 그 뒤는 알다시피 속보 경쟁과 돌려막기가 일상화됐으며, 2005년 실시간 검색어가 등장한 뒤로는 검색어로 조회 수를 늘려 광고 단가를 노리는 꼼수가 일상화됐다. 덕분에 뉴스 플랫폼으로 기능하던 포털 사이트는 해악의 온상지가 되고 독자들의 피로감은 높아지기만 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2006년에는 다음의 ‘블로거 뉴스’가 오픈했다. 앞서 언급한 은 2006년에, 미디어비평 웹진 는 2007년에 창간했다. 나는 이 시기가 한국의 미디어 플랫폼이 극적으로 전환되던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를 첫 변화라고 하면 두 번째는 최근에 왔다. 2009년 트위터, 2011년 크라우드펀딩,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의 연속 등장으로 대안 매체에 대한 실험이 가능한 환경이 됐다고 본다. 특히 2011년과 2012년은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유선 인터넷에서 무선 인터넷으로 미디어 플랫폼이 전환되는 격변기였다.
텍스트 길이보다 '텍의 깊이'가 문제2006년만 해도 오프라인 매체는 온라인 매체와 공존했음을 기억한다. 특히 영화전문지와 패션잡지, 시사주간지들은 나름의 전통 아래 자사의 관점과 정보, 라이프스타일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균형을 잡고 있었는데, 당시 온라인 중심으로 소비되던 일간지와는 대상을 다루는 태도와 깊이에서 확실한 변별력을 유지했다고 본다. 를 비롯해 과 등에 실린 인터뷰나 칼럼이 온라인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당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나는 이런 매체들, 그리고 포털에서 일하는 지인들과 만날 때마다 종이잡지와 온라인 미디어에 대해 격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에는 사정이 많이 달랐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미디어 플랫폼이 모바일로 전환되는 시기에 포털 사이트든 오프라인 잡지든 ‘텍스트의 길이’가 문제가 되었다(물론 가장 중요한 건 광고 수익의 변화였다). 이 문제로 여러 관계자들과 많은 논의를 했는데, 특히 공감을 얻었던 주장은 텍스트의 양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과 네이버에 주간 연재를 맡았는데 양쪽에서 거의 동시에 원고를 절반으로 줄여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특히 네이버의 요구는 거의 모든 서비스에 적용될 만큼 전방위적인 것이었는데, 안팎의 정황으로 미뤄볼 때 2012년 초부터 모바일 플랫폼으로 전환할 준비를 했던 것 같다. 이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관계자들의 변화도 유발했다. 이전까지 일간지와는 다른 관점과 태도를 유지하던 주간지의 전문 기자들과 월간지 에디터들도 독자들이 텍스트를 읽어내는 물리적 속도와 타협하도록 요구받았다. 사람들은 이미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로 거의 모든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를 소비하고 있었다. 매체는 웹툰이나 게임과 경쟁하는 시대에 진입한 셈이다.
그런데 이즈음부터 역발상의 매체가 등장했다. ‘긴 글은 보지 않는다’는 명제가 진실로 받아들여지던 2012년, 1월에는 공정탐사보도를 지향하는 가 창간했다. 3월에는 특정 사안에 대한 깊은 분석을 제공하는 가 창간했고, 그해 겨울 대선을 앞두고는 블로그 등의 글을 선별해 보여주는 가 오픈했다. 2013년 1월에는 일간지의 과장된 제목을 모으는 가 오픈했고, 2013년 중순에는 이 언론사 협동조합으로 전환되었다. 이런 흐름은 한국의 미디어 환경과 독자들의 요구를 재인식하게 했다고 본다. 요컨대 ‘텍스트의 길이’가 아니라 ‘텍스트의 깊이’가 문제였다는 것. 언급한 매체에는 짧은 단신이나 속보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긴 글들이 올라오는데, 주로 데이터나 자료에 충실한 글들이다. 어떤 것은 칼럼 형태기도 하고 어떤 것은 보고서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긴 글을 다 읽고 공유하며 의견을 나눈다. 2013년 9월, 이 소셜 데이터 분석업체 유엑스코리아와 함께 페이스북 페이지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서 총 50개의 언론사 페이스북 페이지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곳은 였다. 2위는 , 3위는 , 4위는 , 5위는 이었는데 6위가 바로 였다. 나 , 보다 높았다. 물론 여기서도 속도가 중요했는데, 그 경우 블로그를 주로 소개했던 까닭으로 뉴스 가치보다는 유머를 가미한 촌철살인이 두드러졌다. 그 점에서 는 매체라기보다는 광고판에 가깝다. 하지만 여기엔 엄밀히 큐레이팅 과정이 존재하고 운영자가 곧 큐레이터가 된다.
지난해 12월25일에 창간한 도 비슷하다. 한국의 를 표방한 이곳은 기자 대신 전문가의 칼럼을 싣는다. ‘음악 저작권’에 대해 음악평론가가 아닌 변호사의 글을 싣는 것이다. 물론 글을 전문으로 쓰는 필자가 아니라서 다소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시도 자체는 여러 시사점을 준다고 본다. 결국 미디어 플랫폼의 변화가 전통적인 기자의 역할을 생산에서 선별로 바꾸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가 이미 보여준 미래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한국에서 2000년 이후 포털 뉴스가 진즉에 그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2002년 즈음 네이버 뉴스 운영자들은 대부분 언론사 기자 출신들이었다). 그 점에서 보다 한국의 포털 뉴스가 훨씬 더 미디어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모든 기자가 큐레이터가 되어야 할까이와 관련해서 프리랜서 글쟁이이자 음악평론가로 분류되는 나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다. 과연 나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 2014년 현재, 미디어 플랫폼은 필연적으로 모바일로 전환될 것이다. 여전히 텍스트 길이는 문제가 된다. 이는 내가 쓸 지면이 줄어든다는 뜻이고, 다시 말해 고료도 줄어든다는 얘기다. 종종 나는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물어보는 지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대부분 언론계 종사자다. 그들 역시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여기게 되는데, 동병상련의 정으로 이런저런 고충을 늘어놓다보면 결론은 ‘기획자가 되자’로 수렴된다. 당연히 큐레이터의 역할도 포함된다. 이제까지 기자는 뉴스를 만드는 사람이었지만 앞으로는 광범위한 분야의 글을 선별하는 지위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기자가 큐레이터가 되어야 할까. 여기에 대해선 여전히 복잡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기자나 비평가의 권위가 줄어들리라고 본다. 애초에 그 권위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독자는 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모르는 영역의 정보와 관점을 얻고 싶어 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에 장문의 글을 쓴다. 글쓰기 수업에는 수강생이 늘고 있다. 이전이나 앞으로나 이런 분위기는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독자들의 안목과 정보의 양이다. 네트워크 시대에 어떤 독자들은 뉴스 생산자를 겸한다. 이때 전문기자나 비평가는 그들보다 더 전문적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삼은 플랫폼의 변화는 뉴스(혹은 칼럼)의 생산과 유통에서 평등한 경쟁 구도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모두 미디어를 소유하는 시대에 이른바 전문 글쟁이들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매체의 공간은 줄어들고 텍스트의 내용 대신 길이와 타협해야 하는 상황에서 신뢰조차 얻지 못한다면 당연히 이 일을 접는 게 타당하다. 그렇지 않다면 소규모 출판물이나 크라우드펀딩을 고민해볼 수 있다. 같은 탐사보도 매체는 영역과 무관하게 상상력을 자극한다. 2013년 여름 소셜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진행된 웹툰 의 매일 1천원 구독료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다. 나 같은 소규모 출판물은 독자들의 후원이나 기관의 지원금으로 제작된다. 음악웹진 <weiv>는 거의 10년 정도 구성원들의 사비로 운영되고 있는데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이것도 나쁘지 않다(그렇다고 권하고 싶은 건 아니다). 아무튼 나는 현재가 미디어 환경의 격변기라고 본다. 이런 전환기가 중요한 건, 그 균열에서 시도되는 실험이 종종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무언가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이 대전환기에 등 비빌 데도 없이 글만 써서 먹고살거나,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들은 과연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을까. 일단 나는 보험 삼아 자격증을 노리고 있다.
차우진 프리랜서 글쟁이</we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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