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넬슨 만델라가 세상을 떠났다. 살아 있는 위인으로 살다가 95살로 떠났다. 그리하여 마침내 저항과 투쟁의 20세기가 저물었다고 누구는 생각할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제도)에 저항하다 반역죄로 27년 옥고를 치렀다. 그가 묶인 섬은 물개들의 서식지였다. 고립도 의지를 바꾸지 못했다. 인고 끝에 마침내 자신이 저항한 체제를 바꾼 사나이, 그는 지구촌 민중의 노래 (We Shall overcome)의 살아 있는 증거였다. 감옥을 나선 71살 만델라는 보복과 응징이 아니라 진실과 화해를 말했다.
1994년 남아공 대통령 취임식 연설이 끝나고 그가 소개한 인물은 감옥에서 그를 감시하던 교도관이었다. “여러분, 이 세 분이 지난 27년의 감옥생활 동안 내가 용기를 가지고 목숨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 분들입니다.” 물론 그들이 수인을 돕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다른 화해의 순간은 다음해 럭비경기장. 1995년 남아공 럭비월드컵 결승전, 6만3천여 관중은 백인 일색이었다. 럭비는 백인들의 스포츠였고, 그들의 초록 유니폼은 증오의 상징이었다. 결승에서 남아공이 뉴질랜드를 꺾었다. 초록 유니폼을 입은 만델라는 백인 주장에게 우승컵을 건넸다. 주장은 “우리는 오늘 6만3천여 명이 아닌 4200만 명의 응원 속에 경기했다”고 말했다. 만델라는 그를 껴안았다. 상징적 장면은 화해의 제도로 이어졌다.
남아공 ‘진실과 화해 위원회’는 부끄러운 과거를 가진 나라들의 모델이 되었다. 진실을 고백하면 처벌하지 않는다, 정신은 참회의 물결로 이어졌다. 위원회 출범 뒤 5년, 스스로 과거를 고백한 이가 7천여 명에 이르렀다. “나는 일생 동안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맞서 싸웠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기회를 갖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이것은 대통령 만델라가 아니라 수인 만델라의 1964년 법정 최후진술이다.
그리고 내려놓았다. 만델라는 1999년 대통령직을 타보 음베키에게 넘겼다. 재임이 가능했지만 단임으로 끝냈다. 그러나 만델라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만델라재단 등을 통해 빈곤과 에이즈에 맞서 싸웠다. 오프라 윈프리 같은 부자 흑인들이 그를 지원하는 친구였다. 빌 클린턴 같은 백인 리버럴도 그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미국, 특히 자유주의자들의 그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고 각별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무리를 통해 그는 남아공뿐 아니라 지구촌의 ‘마디바’(어르신)가 되었다.
그의 의지는 세상을 향했지만, 그의 눈길은 내면을 떠나지 않았다. “27년 동안의 옥살이가 나에게 도움이 된 것이 있다면 고독의 고요함을 통해 소중한 말과 진심 어린 연설이 인생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쳤는지 깨닫게 했다는 점이다.” 2000년 7월14일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에이즈 콘퍼런스에서 그가 한 연설이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에이즈로 숨졌다고 커밍아웃했다. 이렇게 그는 에이즈에 묻은 오명도 껴안았다.
1994년 취임식 연설에서 ‘무지개 나라’를 만들자고 했던 그는 무지개 너머로 떠났다. 그러나 남겨진 세계가 무지갯빛은 아니다. 살인범죄가 세계 10위권인 남아공은 세계에서 에이즈 감염인이 가장 많은 나라, 여전히 인종 간 빈부 격차가 극심한 국가로 남아 있다. 이렇게 그는 위대했을지 모르나, 그가 남긴 유산이 위대하지만은 않다.
2004년 월드컵 열기처럼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그를 비슷한 논조로 추모할 것이다. “마거릿 대처가 만델라 선생님을 테러리스트라 부르고, 아프리칸더가 그분을 반역자로 부르고, 맑스주의자들이 그분을 신자유주의자라고 불렀을 때, 그 발화는 객체보다 주체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설명했다.”(@kohjongsok) 주체들의 정당성은 차치하고라도, 이런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은 무지개 나라가 아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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