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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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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의 시대

독재정권이라는 상처 지닌 지금의 50~60대와 IMF라는 정신적 내상 겪은 자식 세대인 20~30대 모두 어른이 되지 못한 ‘애완의 시대’
“흐르는 것이 목적인 삶”으로 자유로워야
등록 2013-12-06 13:56 수정 2020-05-03 04:27
<애완의 시대> 저자들은 부모 세대로부터 불안을 물려받은 이들, 움직이고 나아가기보다는 길들여지고 정체하는 데 익숙해진, 자신의 미래를 개척할 힘을 잃은 청춘들에 대해 말한다. 미래가 불투명해 보이기만 했던 <미래의 선택> 주인공 나미래는 그런 청춘들의 대표 기수다.

<애완의 시대> 저자들은 부모 세대로부터 불안을 물려받은 이들, 움직이고 나아가기보다는 길들여지고 정체하는 데 익숙해진, 자신의 미래를 개척할 힘을 잃은 청춘들에 대해 말한다. 미래가 불투명해 보이기만 했던 <미래의 선택> 주인공 나미래는 그런 청춘들의 대표 기수다.

드라마 주인공 나미래(윤은혜)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방송작가를 꿈꾸지만 특출한 구석이 없다. 꿈만 꾸고 별다른 준비도 없이 세월을 보내다 막내 작가로 들어가기 민망할 만큼 나이만 먹었다. 대기업 콜센터 계약직 사원으로 일하던 32살 나미래는,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 노래를 부르라는 진상 고객에 응대해 을 부르고, 화장실 가서 우는 게 하루 일과였다. 그런 미래가 하도 답답해 57살의 나미래가 미래에서 날아와 직업도 바꾸고, 미래의 남편도 바꾸고, 결국엔 운명을 바꾸겠노라 선포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엮은 것이 이 드라마다.

드라마는 왜 미래가 꿈만 간직한 채 허송세월을 보냈는지, 무엇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어떤 모욕적인 요구에도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없는 콜센터 직원이 됐는지 등을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갑갑하기만 한 미래의 처지가 그저 남의 얘기만은 아니므로, 자신만만하게 대학에 입학했지만 점점 자신감도 자존감도 잃어가는 과정을 겪는 이들이 대다수이므로. 부모가 다그치는 대로 부지런히 달려왔지만 손에 쥐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원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간극 사이에 서서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 결국은 두 가지 모두 못 가지게 된 게 미래의 얘기만은 아닐 것이므로.

보이지 않는 목줄에 매인 부모-자식

최근 드라마나 영화 등 대중문화에서 잉여로운 30대가 자주 그려진다. 비단 집에서 놀고먹는, 낡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까치집이 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등장하는 ‘삼촌’ 캐릭터만이 잉여는 아니다. 에서 나미래처럼 현재도 미래도 자신이 원하던 삶이 아닌 청춘 또한 잉여이며, 드라마 의 정주리(정유미)처럼 아무리 애써도 평생 계약직 꼬리표를 떼지 못할지 모르는 불안한 처지에 놓인 이도 시대는 잉여라고 지칭한다. 연애가 스펙이자 강박이 된 시대에, 그마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이도 잉여로 호출된다. 이전의 여성영화와 다르게 어떻게 보면 다소 맹하고 루스한, 미성숙한 여인을 묘사한 영화도 근래 몇 년 사이 눈에 띈다(이어지는 기사 참조). 이 캐릭터들은 왜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잉여로 불리고 정의되는 걸까. 최근 출간된 (이승욱·김은산 지음, 문학동네 펴냄)는 이들을 잉여라 부르는 대신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이라 지칭하며 그 답을 한국 근현대사가 형성되며 만들어진 왜곡된 시스템과 급격한 사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부모 세대와의 관계에서 탐색했다.

저자들은 전쟁과 독재정권이라는 상처를 지닌 지금의 50~60대 베이비붐 세대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라는 정신적 내상을 겪은 그들의 자식 세대인 20~30대를 주목했다. 책에 따르면 국가권력의 억압과 살아남아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유년기와 청춘을 보낸 50~60대는 그때의 심리적 불안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다.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논하며 “밥벌이도 못하는 쓸모없는 인간”이 될까 걱정하며, 자식들이 누리는 문화가 “어디서 왔는지 애써 확인시키려 하고, 자신의 희생과 노력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렇게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이들이 50~60대가 되었고, 이렇게 성장하지 못한 어른들이 키운 자식 또한 이제 성인이 되었다.

자라지 못한 어른들이 낳아 키웠으니 자식 세대 또한 여전히 성장하지 못한 채 머물러 있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들 중에는 부모 세대처럼 ‘잉여=실패’로 몰아세우는 청춘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 다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부모로부터 전이된 무의식에 의해 시간과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거나, 바쁘게 살지 않으면 자신이 무능력하고 게으르다고 질타하기도 한다. ‘힘들어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경쟁의 대열에서 낙오할까 두렵기만 하다.

이렇게 국가권력에, 혹은 돈과 성공에 길들여져 안정만을 희구하는 이들, 몸은 자랐지만 정신적으로는 어떤 면에서 여전히 미성숙한 어른들을 책에서는 ‘애완의 세대’라고 정의한다. 반려인의 명령 혹은 보살핌에 익숙해 나이는 먹지만 성장하지 않는 애완견처럼, 보이지 않는 목줄에 매여 있는 이들이 부모와 자식으로 엮이며 살아가는 시대가 ‘애완의 시대’라는 것이다.

책에는 늘 ‘yes. but…’ 게임을 가동하는 청년의 사례가 나온다. 부모로부터 받은 강박 때문에 성공에 대한 열망이 가득해 늘 무언가를 계획하지만, 언제나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것이 “그래, 그렇지만, 그런데…”로 귀결되며 실상 실천에 옮기는 것은 하나도 없는 일상을 사는 남학생의 얘기다. 스스로 많은 것에 좌절하고 자신을 구제불능으로 여기게 된 남학생의 뒤에는 그의 삶을 손에 움켜진 부모가 버티고 있었다. “이만큼 먹고살게 해준 게 우리 부모들이니 너도 헛돈 쓰지 말고 효율성 있는 일에 매진하라”는 것이 부모의 주문이자 자식에게 전수된 가치관이었다. 하지만 부모 세대의 젊은 시절처럼 “할 수 있다”가 많은 것을 해결해주던 때는 먼 과거가 된 지 오래다. 청년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늘 좌절과 긴장을 느꼈고 그 과정에서 상황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저울질만 하다 포기하는 행위를 반복해왔다는 것이 저자들의 분석이다.

저울질만 하다 포기하는 행위 반복

책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부모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지 못한 청춘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직장인 ㄱ(30)씨는 소규모 출판업체에서 일한다. 기업에서 사보나 부정기적 인쇄물을 의뢰받아 제작하는 회사다. ㄱ씨의 꿈은 패션잡지 기자였다. 대학 재학 중 원하는 잡지사의 어시스턴트 모집에 응모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스펙이 부족한가 싶어 이런저런 자격증을 따고 배낭여행을 가고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이를 지원한 부모님은 이왕에 기자를 할 거면 큰 방송사에 들어가길 원했고 그 말을 들은 ㄱ씨는 언론사 입사시험 스터디 모임에 가입했다. 이렇게 준비하다가 원하는 회사의 모집 공고가 뜨면 거기에도 지원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부모의 꿈과 자신의 꿈을 여기저기 걸쳐놓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20대에 취업하겠다는 전의를 상실했다. 그런 가운데 30살까지 무언가 준비만 하는 인생이라는 게 갑갑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시작한 일이 자신의 직업이 되었다. 업무 강도는 요동치고, 직원이 몇 되지 않아 주먹구구식으로 일하는 회사에서 자신이 언제 정규직으로 전환될지 요원하다.

올여름 출간된 (최태섭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가 지적하듯, ㄱ씨는 “자신의 자녀들이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사회를 위해 공헌하는 명문대 출신의 전문직 엘리트가 되길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 (…) 누군가가 궂은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게 나나 내 자녀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이 노골적인 고백들”을 호소하는 부모의 욕망에 귀기울였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목줄에 매여 따라가다보니 그만 자신이 가려던 길을 잃고 말았다. 부모님은 ㄱ씨가 조금 늦더라도 언젠가 어디 내놓아 자랑하기 좋은 직장인이 돼 있을 것이라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ㄱ씨는 때때로 몹시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바람은 강박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잘되기를 응원하는 것이기도 해서, 누구를 어떻게 원망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부모-자식 관계는 “빛과 그림자”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한 세대를 규정하는 세대론이거나, 세대 간 갈등에 관한 것이 아니다. 저자 이승욱씨는 과의 인터뷰에서 이들 부모-자식의 관계가 “빛과 그림자 같다”고 말했다. “50~60대는 기아로부터 근근이 벗어났으나 끊임없이 열심히 일해야 하는, 문화적인 향유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들이다. 부모들은 이렇게 팍팍하게 살았는데 자녀들은 아니다. 한쪽은 경제적으로 풍족해졌으나 문화적으로 피폐한 세대라면, 자녀들은 경제적으로는 팍팍해졌지만 문화는 누리려고 하는 이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여전히 공무원 준비하라, 정규직이 최고다, 정신 못 차렸다고 다그치는 것이 부모 세대다. 자식들은 그런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렇게 각자 자기 삶에서 부족한 것을 충족하지 못하고 서로 부족한 것을 가진 이들이다.”

이렇게 그 누구도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이 서로를 다그치며 아픈 현재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지난한 애완의 시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어렵지 않았다. 책은 교육자 이오덕 선생의 말을 빌려 자유로워질 것을 주문했다. 그 어떤 것에도 순응하지 않고 “흐르는 것이 목적인 삶”을 살다보면 퇴행과 정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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