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만나면 다 알 수 없을까봐, 만남을 청했다.
“여보세요.” 낮고 굵은 목소리가 들린다. “뵙고 싶습니다. 사무실로 찾아가도 될까요.” “별로 할 말이…, 싫은데요.”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하지 마세요.” 소문대로, 남기춘(53·사법연수원 15기·사진) 변호사는 까칠했다.
검찰 재직 시절 ‘잘 드는 칼’ ‘마지막 남은 야전사령관’ ‘강골’ 등으로 불린 검사였다. 삼성 비자금 사건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책 를 통해 ‘삼성에서 뇌물을 받지 않은 검사’ 중 한 명으로 남 변호사를 언급하기도 했다.
최근 남 변호사는 ‘친구’ 구하기에 나섰다.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 수사 과정에서 지시 불이행 등을 이유로 대검찰청이 법무부에 중징계를 청구한 윤석열(53·사법연수원 23기) 여주지청장의 특별변호인이 된 것이다. 징계 대상자의 특별변호인은 법무부 징계 심리 과정에 참여해 보충 진술과 증거 제출 등을 담당하게 된다.
사법연수원 기수는 다르지만, 두 사람은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로 대학 시절부터 막역한 친구였다. 기질도 비슷해, 권력형 비리 수사를 하는 ‘특수통’ 길을 걸었다. ‘국정원 수사를 못할 만한 외압을 느꼈다’며 검찰 수뇌부에 돌직구를 날리는 친구의 모습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던 과거를 회상했을지 모른다. 남 변호사는 2010년 서울서부지검장 재임 시절, 한화·태광그룹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과잉 수사’ 논란이 일자 이듬해 1월 사표를 냈다. 그 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했다. 법무부의 부당한 수사 개입이 있었다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불과 1년 전, 남 변호사는 박근혜 쪽 사람이었다.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산하 클린검증제도소위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박 후보 및 친인척·측근에 대한 검증과 관리를 하는 자리였다. 친구의 소신을 꺾으려 한 이들은, 박근혜 정권과 무관하다 말할 수 없다. 윤 지청장의 특별변호를 맡게 되면서, 집권에 힘을 보탰던 정권과 거리를 두게 된 셈이다.
지난해 6월 남 변호사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입성한다. 2010년 한화·태광그룹 비자금 수사 때, 이 기업들의 변호를 맡은 쪽이 바로 김앤장이었다. ‘살아 있는 권력보다, 살아 있는 재벌에 대한 수사가 더 어렵다’던 소신과 엇갈리는 행보였다. 로펌 쪽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김앤장을 개혁해달라’는 설득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지난 10월, 남 변호사는 김앤장을 나왔다. 서울 광화문에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연 뒤 맡은 첫 사건이 윤 지청장 특별변호다.
‘잘 드는 칼’은 때때로 위험하다. ‘나쁜 놈’을 잡겠다는 신념에 가득 찬 거친 수사는, 강압 수사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1991년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의 당사자 강기훈씨는 지난 10월19일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수사 검사 중 한 명인 남 변호사가 “‘이 빨갱이 새끼야. 너 같은 건 내가 거꾸로 매달아 취조하면 3시간이면 끝난다’고 협박했다”고 회상했다.
검찰 권력은 체제 수호적이며, 보수적이다. 남 변호사나 윤 지청장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런 이들마저 조용히 지내기 힘든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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