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섣불리 권하기 힘든 영화들이 있다. 처럼 주제고 뭐고를 떠나 그 잔상이 몇 년씩 괴롭히는 영화도 있고 처럼 소재가 끔찍해 보는 내내 기분이 나쁜 영화도 있다. 반면 나 스스로는 가끔 다시 꺼내보지만 남들에게, 특히 내 아이들에게는 절대 권하지 않는 영화들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다카하타 이사오의 다.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슬프고 너무나 불쾌한, 함께하기 힘든 세 가지 감정이 온통 뒤엉켜 들끓게 하는 애니메이션이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며 전범국인 일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이던 시기를 배경으로, 부모 잃은 어린 남매가 나온다. 이 영화는 젊어서 봐도 꼬맹이 여동생의 고통 때문에 울컥하게 되지만, 이렇게 중년에 접어들고 나면 오빠라고 연민이 덜 갔던 소년 역시 어린 아기일 뿐임이 이젠 보이기 때문에, 전엔 안 울었던 곳들에서조차 통곡을 하게 된다. 그런데, 굶주림 끝에 정신이 혼미해져 자갈을 집어먹으며 누워 있는 꼬마의 죽음이 지부리 스튜디오 특유의 아름다운 자연과 서정적인 음악과 함께 나올 때쯤이면 그냥 주체 못하고 눈물이 흐르게 되는데 동시에 슬슬 기분이 나빠지는, 참으로 드문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내가 배부르면 넌 배 터졌겠다, 하는 우스개 얘기에서처럼, 전범인 니네가 애들을 앞세워 피해자연하는구나, 하는 가증스런 기분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나같이 배운 어른은 이런 걸 봐도 감정과 역사를 구분하지만, 몽매한 내 아이들이 이걸 보고는 일본을 측은히 여기며 피해자가 가해자를 동정하는 오지랖적 사관을 갖게 될까봐, 나는 애들과 별의별 호러영화도 함께 보면서 이것만큼은 안 보여줘왔다.
그런데 이런 영화 목록에 한 편을 더 추가하게 됐다. 가 그것이다. 아… 이 영화에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아이의 당당한 꿈, 그 꿈을 그대로 가진 채 어른이 된 남자, 창공, 따뜻한 차를 곁들인 카스텔라, 소박한 밥집의 고등어구이, 자기 상처를 과장하지 않는 절제를 아는 인물들, 혈기 넘치는 청년들의 의기투합, 그리고 거기다가 프랑스 시까지! 그러고는… 휴, 이 밀려드는 불쾌감. 지로는 그 소용돌이 속을 직접 산 인물이니 그렇다 치고, 미야자키 하야오 저 감독은? 에서 가족과 자연을 얘기하고, 에서 반전을 얘기하고, 일전에도 아베 총리의 극우 역사관을 들이받았다던 저분은? 어쩌자고 전범국으로서의 태평양전쟁이라는 미친 캔버스에 저런 아름다운 비행기를 날렸단 말인가? 지로는 필생의 꿈대로 창공을 좇다가 의지와 무관하게 비극적 역사 속에 갇혀버렸다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미야자키 감독은 “필생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어서 그려놓고 보니 배경이 태평양전쟁이었네? 그 비행기가 가미카제 비행기였네?” 하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와 는 우리 애들 역사 공부가 제법 됐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는 계속 숨겨놔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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