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지나간다>의 ‘야행’ , 편혜영, 창비
[밤] “인체의 내부는 언제나 밤이다”라고 말한 것은 캐나다의 시인 크리스토퍼 듀드니였다. 시적인 통찰로 가득 찬 은 밤에 관한 정밀한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눈부신 햇빛도 몸의 내부에 다다르지 못하며, 우리 모두는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육체의 밤’에서 태어났다. 밤의 어둠은 우리의 시작점이자 종착지다. 밤이 찾아오면 낮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 몸을 감싼다. 일상적인 것들이 정지하는 그 순간에 밤은 휴식과 축제, 불안과 고독, 혼돈과 붕괴라는 여러 겹의 시간을 쏟아낸다. 밤이 오면 낮에 자명해 보이던 것들은 아득한 미지의 것으로 변한다.
편혜영의 에 수록된 단편들은 밤과 비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건조하고 정확한 문장들은 예감으로서의 밤과 삶의 현재진행형으로서의 밤을 동시에 보여주며, 피할 수 없는 불안의 시간을 대면하게 만든다. 삶의 사소한 기미들이 얼마나 거대한 붕괴와 무의미와 연결돼 있는지를 편혜영처럼 날카롭게 보여주는 작가도 드물다. 이라는 단편에서 철거가 임박한 아파트에서 통증에 시달리는 노인은 자기를 데리러 온다고 한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 단전으로 인해 밤이 완전한 어둠이 되었을 때,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방문한다. “어떠한 위협이나 경고 없이, 약탈이나 폭력도 없이, 인사말이나 사과의 말도 없이” 그 집을 방문하고 잠시 그녀를 응시하다 돌아가는 낯선 사람은 가늠할 수 없는 밤을 데리고 온 사람일지도 모른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그녀는 부엌에서 뒷물을 하고 있다. “이미 통제력을 상실한 아랫도리는 언제나 눅진”했으며, “벌거벗은 아랫도리는 주검의 일부처럼 보였다. 그것은 십 년도 더 전에 보았던 남편의 시신을 연상시켰다.” 삶이 어디로 갈지를 구체적인 실감으로 말해주는 것은 몸에 대한 수치스러운 감각이다. 뒷물조차 힘든 그녀의 몸은 자기 몸속의 어둠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일생을 통틀어 이만 번도 넘게 검은 밤을 맞았을 텐데, 끊임없이 밤이 지나갔을 텐데, 어둠의 질감을 분간하고 그로써 시간을 짐작할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이만 번의 밤’은 매번 달랐겠지만, 그 시간의 세부를 기억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만 번의 밤이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마지막 밤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간절하게 기다리는 사람이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마지막 밤이 언제 오리라는 것을 알 수 없다. 그 마지막 밤을 향해 있는 것이 이만 번의 낮과 밤이라면, 오늘 이 밤은 마지막 밤의 유예이자, 마지막 밤이 허락한 지금 살아 있는 몸의 증명이다. 이만 번의 밤은 제각각 현재형으로서의 밤이었으며, 그 모든 밤이 일거에 과거형이 되는 시간에도, 우리는 마지막 밤을 현재로서 겪게 될 것이다. 삶을 가능케 하는 것은 오늘 이 시간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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