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없는 삶에서, 여전히 우정을 말하는 것은 공허해 보인다. 쉽게 ‘우정’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맹목적 인 가족주의이거나, 서로의 이해관계가 만나는 교환가치의 세계일 가능성이 높 다. 좀더 싸늘하게 말한다면, 인간들 사이의 무한경쟁 체제를 도입한 신자유주 의 세계에서 진정한 우정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도 있다. 블랑쇼가 ‘친구도 없는 모르는 자에 대한 우정’을 언급하고, ‘관계 없는 관계 또는 어떤 기준으로 도 가늠할 수 없는 관계’를 말한 것은, “타인의 부재- 항상 미리 사라질 위험이 있는 기이한 타인의 현전- 를 통해 우정은 이뤄지며 매 순간 사라진다”는 사유 때문일 것이다. 우정은 ‘나의 비움’을 통해 혹은 ‘이름’과 ‘하나됨’의 억압에서 벗 어나는 그 순간에만 가능할지 모른다.
시인이며 사회학자인 심보선의 은 “내가 사랑하는 예술과 내가 살아가는 삶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탐구한, 삶과 예술의 분열에 대한 싸움의 기 록이다. 흥미로운 것은 ‘예술과 우정’의 문제를 다룬 두 편의 글. 이 시대에 예술 과 우정은 먼 거리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술계에도 성공과 경쟁에의 욕망을 부추기는 시장의 논리가 있으며, 예술은 본질적으로 혼자만의 비범한 작업인 것처럼 여겨진다. “취향을 통한 자아표현은 소비에 의존하는 자아과시로 전락 했고, 공동체와의 대화는 폐쇄적 취향공동체의 자기확신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는 ‘속물’이나 ‘동물’이 되지 않고, 문학적인 우정을 나눌 수 있을까?
심보선이 ‘텅 빈 우정’이라고 명명한 우정의 가능성은, “함께 살고 함께 존재하 고 함께 지각하는 것, 그 자체가 좋고 즐겁기 때문에 맺는 타인과의 관계이다”. 예술이 시장과의 전략적 협약과 비범함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삶의 평범함과 궁색을 수용하면서 거부하는, 증언하면서 저항하는 실천”이 될 때, 예술은 우정 과 만난다. ‘6·9 작가 선언’의 경험을 통해, 그는 “인맥과 학연과 명성의 실제성 들을 무화시키는 한국 사회의 비참과 폐허 앞에서 우리 모두는 ‘아무것도 아닌 자’로서 동등하게 서로를 마주 본다”는 문학적 우정 의 사건을 말한다. 아직도 이런 우정이 불가능해 보 인다면, 이런 문장들을 선물하자. “어떤 변수, 배경, 원인들의 재현이 아니라 만남 그 자체의 무목적적 인, 그러나 신비로운 현현. 첫 번째이자 마지막 매 듭. 맨얼굴, 뜻밖의 목소리”, “당신이 텅 빈 공기와 다름없다는 사실./ 나는 고백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당신의 입으로 말하게 할 것입니다./ (중략) 당 신과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동시에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처럼.”(‘텅 빈 우정’)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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