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마음산책 펴냄
삶은 매 순간 빛처럼 가볍게 스쳐지나가지만, 삶의 결과가 그 런 것은 아니다. 삶의 디테일 안에서 장면들은 가볍게 흐르지 만, 최종적인 무의미 앞에서 삶은 끔찍한 무거움이 될 수 있다. 밀란 쿤데라의 에서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이것을 배 경으로 거느린 우리의 삶은 찬란한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 직함은 진정 끔찍한 것이고, 가벼움은 아름다운 것일까?”와 같은 문장을 기억할 수 있다면,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의 역설에 대해 조금 눈치채고 있는 것일까?
제임스 설터의 은 거의 ‘완벽한’ 소설이다. 완벽한 미국인의 결혼 생활에 대한 완벽한 미국 소설의 문장이 거기에 있다. 지나치게 세련되고 위트 넘치고 서늘한 문장은, 인물과 풍경을 간명한 비유로 묘사할 때, 생활과 여행의 세부를 포착할 때, 의미심장한 동시에 무의미한 대화를 나열할 때, 성행위 장면 에서, 특히 삶의 붕괴 징조를 암시할 때, 더할 나위 없이 미묘하고 정밀하다. 완 벽한 것은 또한 이 미국인 부부의 삶이다. 아내는 매력적이고 우아하며 빅토리 아식 저택에서 살림을 한다. 이름 있는 건축가인 남편은 아내에 대한 사랑을 잊 지 않으며, 딸들은 무척 사랑스럽고, 달콤한 오후는 영원할 것 같다. 지인들과 의 저녁 모임은 유리잔과 와인과 꽃들로 둘러싸여 여유로우며, 동시에 붕괴의 징조를 드리운다. 그들은 통제할 수 없는 욕망에 몸을 던지고 “자기밖에 모르 는 성실한 배우”처럼 살아간다. “이 평온한 시간, 이 안락한 공간, 이 죽음, 실제 로 여기에 있는 모든 것들, 접시와 물건들, 조리 기구와 그릇들은 모두 부재하 는 것의 삽화였다.” “붕괴는 시작이 보이지 않는다.”
원제인 ‘Light Years’는 ‘가벼운 나날’이고 ‘빛나는 나날’이며, ‘광년’이라는 시간 단위다. 거시적인 시야에서 보면 삶의 선택들은 어리석고 기만적이다. 실재적인 것은 삶의 디테일뿐이지만, 디테일은 보존되지도 기억되지도 않는다. 소설의 문 장이 아름다운 것은 그 디테일을 보존하려는 불가 능한 노력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하나의 덩어리로 이해되고 묘사될 수 있지만, 가까이 갈수록 흩어져 빛과 그림자로 조각났고, 그 빽빽함 때문에 잘 보 이지 않았다. 그 안에는 형태가 없었고, 경이로울 정도의 디테일만이 언제나 가득했다.” 매일 조금씩 붕괴되고 죽어간다는 것은 “가벼워진 채로, 무서 울 정도로 사소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 ‘자기 자신 의 시체’가 되는 것. ‘삶이 갖고 있는 악의’에는 치 유법이 없다. 다만 ‘돌이킬 수 없음’을 이해하는 것 만이 유일하고 겸손한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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