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영화를 다시 보면 전혀 다른 영화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와이 순지의 를 다시 보았을 때, 14년 전의 ‘명보극장’을 자세히 기억해내지 못했다. 극장은 사라졌고, 그 시절의 불투명한 감각은 제멋대로 떠올랐다 무력하게 사라졌다. 소년이 서 있던 도서관 창문에는 하얀 커튼이 하늘거리고, 첫사랑의 뉘앙스는 환각과 같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제 명백하게 ‘애도’에 관한 영화였다. 등반 사고로 연인을 잃은 여자와 폭설로 집이 고립돼 아버지를 잃은 여자는 외모만 닮은 것이 아니라, 애도의 시간 속에 있다는 점에서 같은 사람이다. 그들이 편지를 나누는 일은 애도의 연대이며,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모든 러브레터는 ‘상실된 것’을 향해 부치는 것이다. 러브레터는 애도의 글쓰기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나는 ‘당신’이라는 상실을 사랑한다.
내게 애도에 관한 중요한 책 중 하나는 롤랑 바르트의 (김진영 옮김·이순 펴냄)다. 이 책에서는 정밀한 이론가 롤랑 바르트를 만나는 것 대신, 어머니를 잃은 한 남자가 실존의 무게를 고스란히 실어 독백처럼 썼던 일기를 엿볼수 있다. 짧고 예리한 언어는 자기 슬픔의 심층으로 내려간다. 이를테면 “나와 그녀는 하나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동시에) 죽지 못했다”라는 문장에서, 죽음이라는 사건 앞에서 그 누구도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될 수 없음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리고 “누구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와 같은 문장을 만나면, “완전히 망가져버린 느낌 또는 불편한 느낌. 그러다가 때때로 발작처럼 갑작스럽게 습격하는 활기”의 교차를 실감하게 된다.
이 책에서 애도의 또 다른 문맥이 있다면, 애도를 “고통스러운 마음의 대기 상태다: 지금 나는 극도로 긴장한 채, 잔뜩 웅크린 채. 그 어떤 ‘살아가는 의미’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하는 그 지점이다. 그 지점에서 애도는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다림을 지속하는 문제다. 그때 애도는 타인들을 향해 열려 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패악은 그 사회가 슬픔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라는 상황. 서울 대한문 앞 분향소가 불탔다. 천막의 잿더미에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둘러쳐진 것을 보고 세상의 잔혹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애도의 지속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는 살 만한 세계가 아니다. 나는 당신을 애도한다. 나는 ‘당신’이라는 부재 속에 대기한다. 나는 ‘당신’이라는 상실을 다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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