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행은 계속 미뤄지고, 어떤 여행은 다음 장면을 알 수 없으며, 어떤 여행은 그 끝을 짐작할 수 없다. 여행은 완결되지 않는 동경이고, 그 대상을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다. 현대의 여행은 영웅의 모험도 아니고 낙원의 탐색도 아닐 것이다. 살아 있는 한 여행자는 언젠가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귀환하지 않는 궁극의 여행은 ‘죽음’이라 불러야 한다. 짐 자무시의 처럼 여행의 환상을 철저히 제거한 영화를 알지 못한다. 이민자들이 경험하는 미국은 그곳이 뉴욕이든, 클리블랜드이든, 플로리다이든 ‘천국보다 낯선’ 황폐한 곳이다. 어디를 떠돌더라도 생의 무의미와 단절적 관계를 피할 수 없다.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고, 어떤 충만한 상징성도 찾을 수 없는 여행. 함께 여행한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함께 영화를 보고 무감하게 흩어지던 그런 밤의 기억이 있었을 것이다.
권여선의 소설집 에서 단편 ‘끝내 가보지 못한 비자나무 숲’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이 소설이 표제작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삶의 우연과 착종, 피할 수 없는 오인에 대한 작가의 서늘한 감각은 이 소설에서 독특한 여행 서사 하나를 만난다. 죽은 옛 연인의 동생에게 걸려온 전화 때문에 그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제주로 가게 된 주인공은, 그곳에서 비자나무 숲을 찾아가지 못하고 다른 ‘환각’을 마주한다. 여행은 끝내 그 내용이 밝혀지지 않는 옛 연인의 어머니가 꾼 꿈 같은 것이다. 혹은 그 전모가 드러나지 않는 옛 연인의 가족과의 비밀스런 과거이거나, 주인공이 경험하는 “임종을 앞둔 노파가 되어버린 환각”과 같은 것이다. 길은 “다음 풍경을 감추고 있”지만, 그다음 풍경이 환각이거나, 환각 같은 죽음일 수도 있다. 죽은 옛 연인의 가족들과의 어색한 식사 뒤 비자림을 찾아가는 길은, 끔찍하고도 비현실적인 사고, “환각의 종료를 알리는 뾰족한 별 모양의 현기증”으로 마감된다. 그녀는 끝내 비자림에 도달하지 못하고 삶의 끔찍한 우연이 순간을 죽음의 그림자로 뒤덮는 장면을 만났으리라. 어떤 시간도 완전히 수습되지 않은 채 바로 이 순간 닫힐 수도 있는 길, 끝없이 도착이 연기되는 길의 시간을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설이 주는 여운의 둔중함은, 어쩔 수 없는 오인과 참혹한 우연으로서의 생이 결국 전모를 다 알기도 전에 불현듯 마감되리라는 차디찬 예감 때문이다. “이름이 사라지면 불러서 애도할 무엇도 남지 않”게 되는 것을, ‘여행’이라는 익숙한 은유로서의 생이라고 해두자. 이번 생의 여행이 어떤 장면에서 멈추게 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각각의 생은 비밀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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