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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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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보다 나은 건 ‘젊음’뿐

상속되는 결핍
등록 2013-08-28 17:42 수정 2020-05-03 04:27
천운영, , 문학과지성사

천운영, , 문학과지성사

미성숙한 존재를 완전한 인간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교육이라고 말하지만, 모든 교육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어떤 교육은 살아남는 법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타인에 대한 적의와 자기 학대를 가르친다. 가족 간에 이뤄지는 일상적인 ‘교육’이 결핍과 폭력의 대물림이라는 ‘나쁜 교육’의 사례가 되기도 한다. 게오르크 지멜이 “교육은 불완전한 것이 보통이다. 그 각각의 작용에 따라 두 개의 대립하는 경향, 즉 해방과 속박에 봉사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때, 교육은 해방의 계기이기도 하지만 헤어나올 수 없는 속박의 계기가 된다.

천운영의 소설집 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이 작가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이미지의 강렬함과 밀도라기보다는, 결핍의 사실성과 늙음과 죽음에 대한 깊고도 투명한 탐구다. 그것은 물론 작가적 성숙과 진화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남은 교육’이 인상적인 것은, 제목이 주는 흥미 때문은 아니다. 엄마와 딸 사이에 이뤄지는 훈육 과정은 교육이 어떻게 속박의 계기가 되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엄마는 딸에게 욕망의 대상으로서 여자의 위치를 상속하고, 엄마의 결핍은 딸로 하여금 결핍의 미래를 보게 한다. 혼자 살고 있는 37살 딸의 집에 엄마라는 ‘불청객’이 찾아왔을 때, 이미 전쟁은 예고됐을 것이다. 능력 없는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했으며, 급기야 살던 집을 날린 엄마와 그 삶의 대물림에서 자유롭지 못한 딸은, 꽃무늬 접시 세트를 두고도 서로에 대한 적의와 공격성을 감추지 않는다.

엄마가 딸에게 해온 교육이란 “네 몸은 네가 지켜라”라는 것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게 되는 게 사랑”이라거나, 사랑받기 위한 여자의 조건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엄마의 삶이 딸에게 실제로 전수하고 있는 것은 사랑받지 못하고 늙어가는 여자의 헤어나올 수 없는 모욕감이 자기혐오로 전이되는 장면이다. 충동적으로 신부의 속옷으로 갈아입거나, 더 젊은 여자에게 적의를 느끼거나, 자신에게 소름이 끼친다고 말하는 헤어진 남자에게 매달려 협박과 애원을 일삼는 딸은 엄마의 삶에서 받은 ‘남은 교육’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딸이 “노여움과 심술과 억지로 가득 찬 노인네”인 엄마의 삶보다 조금 나은 것은 ‘젊음’ 자체일 뿐이나, 그것이 결국 어디로 가게 될지 딸은 엄마를 보며 예감한다. 그 예감의 두려움이 “엄마를 죽였어야 했어”라는 극단적인 회한으로 귀결되는 것이, ‘남은 교육’의 역설적인 핵심이다.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 여자의 늙음은 상실과 패배의 이름이 되며, 엄마는 딸의 피할 수 없는 미래다. 여자의 생이 결핍의 상속이 되지 않으려면, 이 교육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지는 싸움이 시작돼야 하겠다. 그렇다 해도, 이 교육의 오랜 역사와 끈질김에 대해 함부로 말하기는 어렵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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