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등기된 이름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주민등록증이나 여권을 다시 만들었을 때, 혹은 오래된 학창 시절의 성적표 따위를 들여다볼 때, 거기 등재된 이름이 기이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이름은 ‘나’라는 사람의 공적인 기호이지만, 그 이름은 ‘내’가 통과한 시간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름은 텅 비어 있다. 그런데도 이름을 영혼의 표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운 사람의 이름을 부르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적이 있는가/ 자기 이름을 부르다 돌아온 적 있는가”(이윤학, ‘씨앗을 보이는 열매’) 그런 서늘한 순간이 있다면, 그 이름은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며, 주문처럼 외쳐야 하는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김소월, ‘초혼’)인 것이다.
‘김 박사는 누구인가‘, 이기호, 문학과지성사
이야기의 운명과 그 사회적 구성에 대한 흥미진진한 통찰을 보여주는 이기호의 소설집에는 이야기와 이름을 둘러싼 소설이 많다. 단편 ‘행정동’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지도교수를 끝없이 조른 덕에 대학 행정실의 임시직 일을 맡게 된 사람이다. 그가 하는 일은 오래된 학적부를 전산프로그램에 입력·수정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등기된 이름을 다시 등재하는 일이면서, 이름을 지우고 다시 입력하는 일이다. 재입력되는 이름은 “마치 커다란 비밀처럼만 여겨졌다. 아무도 모르는, 이제는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는” 그런 이름이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몰래 야근을 해야 하는 ‘자기 착취’의 상황에서 이런 작업은, 오늘날 ‘개인성’이 처한 위태로운 위치를 건조하고 날카롭게 보여준다. 함께 근무하는 여자와 심야 소동을 겪은 뒤 그는, “학적부의 숫자들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류란 원래 사실이 필요해서, 사실을 만들어내기 위해, 작성된 것이니까.” 이름을 둘러싼 서류상의 ‘사실’은 등재를 위한 사실에 불과하지만, 그 제도적 사실은 힘이 세다. 국가가 이름을 관리하는 주민등록이나 가족관계증명서 위에 작동하는 공허하지만 강력한 힘 같은 것들.
삶의 실재와 그 세부들은 기록할 수 없으며, 등기된 이름은 그 안에 커다란 공백을 남긴다. 이름은 그 사람의 내밀한 고유성에 대해 아무것도 담보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이라는 고유명사를 삭제하고 그 사람을 생각할 수는 없다. 당신의 이름은 뼈아픈 비밀과 같고, ‘나’는 결코 ‘당신’이라는 단 하나의 이름에 닿을 수 없다. 그 사람의 영혼과 삶을 정확하게 요약하는 이름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부서진 이름 하나를 되뇌는 순간은 아직 남아 있다. 이름은 불가능하지만, 또한 불가피하다. ‘당신’에게 꼭 어울리는 이름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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