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가 다만 공간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광대한 우주적 거리를 계산할 때는 빛의 속도라는 단위를 동원해야 한다. 절대로 닿을 수 없을 만큼 누군가와 떨어져 있다면, 죽음처럼 건너갈 수 없는 곳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다른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아득 한 거리는 아득한 시간이다. 아득한 곳에 대한 응시는 가늠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응시다. 이런 감각에서 배우는 것은 우주적 겸손함이라는 영혼의 문제다.
배명훈의 은 공상과학(SF) 장르소설의 양식 안에서 우주전쟁과 사랑의 고백이라는 요소를 연결시킨다. 천체물리학과 미래의 군사학적 정보가 감성적인 문장과 결합돼 있다. 우주적 거리 감각과 우주전쟁의 상상력은 사랑의 근원적 조건에 대한 매력적인 은유가 된다. 연인들은 “170시간을 날아가서 40시간 동안 너와 함께한 다음 다시 180시간을 날아서 복귀하는” 거리에 있으며, “네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단 한순간도 망설임 없이 대답해줘도 너에게 닿는데 7 분44초가 걸리고, 또 거기에 대한 너의 대답이 돌아오는 데 17분44초가 더 걸리는 지금의 이 거리”에 있다. 사랑의 근원적인 불안이 “35분28초가 지난 뒤에도 그리운 그 사람의 마음이 그때 그곳에 한결같이 머물러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 그 사람의 마음이 옮겨갔다는 것을 아는 데 또다시 17분44초가 걸린다는 사실”에 기인한다면, 우주적인 거리를 오가는 사랑은, 시간의 장벽에 둘러싸인 사랑의 치명적 한계를 상기시킨다.
우주전쟁도 그와 같아서 30광초 거리에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의 공격을 인지하는데 30광초가 걸리고 반격에 30광초가 걸린다면, 그 시간이 지난 뒤 적이 그 자리에 있다는 보장은 없다. 광대한 우주 공간에서 결국 우리는 “창문 하나도 없는 잠수함처럼” 침몰해 있는 조난자일 뿐이며, “상상도 할 수 없을만큼 거대한 공백”이 그곳에 있다. 우주적 거리를 사랑에 대한 거리의 은유로 만드는 것은 아름답고 잔혹하다. “같은 우주에 갇혀 사는데도 우리는 전혀 다른 우주에서 사는 것”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연인이 “우리 아직은 때가 아닌가 봐. 기다릴게. 때가 되면 찾아와”라는 쪽지를 남기고 사라졌다면, 그들은 아직 다른 시간, 다른 우주 속에 있는 것이다. ‘그때’가 영원히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예감은 피할 수 없다. 그래도 지금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면, “네가 남긴 중력장” “네가 머물다 간 자리에 남아있는 그 커다란 공백”을 더듬을 수밖에 없다. 어둡고 거대하고 고요하고 막막한 거리 너머로 고백을 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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