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일구고 있는 텃밭의 오이·가지·고추가 더위 속에도 탐스럽 다. 주인의 허락하에 열매를 따는데 왠지 마음은 남의 수확물을 강 제로 탐이라도 하듯 움찔거린다.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챘나. 근처에 묶여 있던 지인이 키우는 개들이 나를 발견하고 불안하게 짖어댄다. 안 그래도 개를 무서워하고 경계하는 사람인데 짖어대는 소리를 들 으니 더욱 오금이 저려온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동물이 라면 애완동물, 야생동물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대학 다니는 작은 딸이 맹렬하게 짖어대는 개들을 향해 성큼성큼 손을 내밀고 다가선 다. “엄마, 정말 귀여워~.” “앗, 안 돼~.” 행여 물리기라도 하면 어쩌 나 안 된다고 손사래를 치려는데, 말할 겨를도 없이 작은딸의 손은 이미 개의 목덜미를 쓰다듬고 있다. 어, 그런데 순간 개들이 짖기를 멈추고 작은딸의 손길에 눈을 지그시 감고 꼬리를 흔든다. ‘이게 뭐 지?’ 싶었다. 나를 향해서는 그토록 날선 경계심을 보이던 개들이 왜 작은딸 앞에서는 이렇게 무너지는 거지?
내가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저는 식물을 자꾸만 죽이는데 어떻 게 하면 좋을까요?’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한동안 많은 생각을 했 다. 정말 식물을 잘 죽이는 손이 있을까? 아니면 단순히 관심과 원 예 지식의 부족 탓일까? 그도 아니면 식물이 놓인 장소의 문제는 아 닐까? 물론 이 모두가 원인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식물을 잘 못 키운 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공통점이 있다. 식물을 만만하고 친근 하게 보지 못하고 겁을 내고 불안해하거나 혹은 안절부절 어찌할 바 를 모른다.
살면서 정말 기가 막히다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나에게서 시작돼 나에게로 돌아옴을 느낀다. 개들을 무서워하는 마음이 그들에게 더 경계심을 갖도록 하고 식물을 부담스러워하는 마음이 결국 식물을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도록 하는 것처럼, 상대를 대하는 마음이 메아 리가 되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데, 그걸 종종 잊고 산다. 그리고 이렇게 원망한다. ‘개들은 왜 나만 보면 짖는 거야?’ ‘왜 식물들은 내 손만 닿으면 죽는 거지?’ ‘왜 저 사람은 나한테만 신경질을 부리는 거야, 짜증 나게!’
오경아 작가·가든디자이너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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