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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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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어내고 잘라야 할 욕심

가지치기의 숨은 의미
등록 2013-05-20 09:38 수정 2020-05-03 04:27

“아, 아프겠다….” 잘 알고 있는데도 봄철 심하게 가지치기된 가로수 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불쑥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가지치기는 식물의 일부 가지나 잎눈, 꽃눈을 잘라주는 것으로 그 방법과 시기 는 나무의 종류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그렇다면 식물 자체를 자연 상태 그대로 두지 않고 인간이 굳이 가지치기를 해야 할 이유는 무 엇일까? 우선 가지치기의 순위는 이미 죽어버린 가지, 가지가 서로 부딪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교차되는 가지, 또 기형적으로 유난히 삐죽하게 자라는 가지 등이다. 결론적으로 단순히 모양을 잡자고 나 무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좀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가지치기다.
가지치기의 유래는 인간이 식물의 재배를 시작한 때로 거슬러 올라 가고, 특히 분재 기술이 시작된 중국에서는 고도로 가지치기의 노하 우가 발달했다. 그런데 가지치기는 인간이 발명해낸 신기술이 아니 라 실은 자연 상태의 나무를 관찰하며 인간이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자세히 숲 속을 들여다보면 나무 스스로가 죽은 가지를 떨어뜨리고, 너무 많은 잎을 달고 있다면 바 람이 부는 날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잔가지를 끊어낸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지치기에서 중요한 것은 가지를 끊어주는 정확한 각도와 길이, 시기다. 그리고 가지치기가 필요한 나무도 있지만 그렇 지 않은 나무도 있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이 역시 정 원사들이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자연의 숲을 관찰하며 각 나무마 다 적합한 가지치기 방식을 연구해온 노하우가 있으니 반드시 공부 가 필요하다. 만약 이런 공부도 없이 마구잡이로 나무를 잘라준다면 이것은 오히려 나무를 죽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영국에 살던 어느 해 여름. 딸들과 함께 마을길을 산책하던 중이었 다. 참 공교롭게도 인접한 두 이웃집이 모두 울타리에 장미덩굴을 심 어두고 있었다. 그중 한 집은 매년 정갈하게 장미의 가지치기를 해왔 는지 튼실한 몇 줄기가 담장을 감싸고 있었고, 잎은 많았지만 질병 없이 건강했고, 어디서도 볼 수 없을 만큼 꽃이 탐스러웠다. 그런데 그 옆집의 장미는 가지치기를 해온 흔적 없이 무성하게 우거지고, 가지는 이리저리 엉키고, 꽃도 작고 그 양이 적었다. 두 집을 바라보 며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가 너희들 야단치고 하지 말라 는 것도 식물의 가지치기랑 좀 비슷하지 않니? 더 건강하게 저렇게 예쁘게 자라라고 하는 거지 어디 미워서 그러나….” “아, 이런 걸 보 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 그냥 꽃만 보세요, 엄마!”
가지가 잘려나가는 고통은 나무도 마찬가지다. 가지치기가 일어나면 그해 일부 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등 심한 몸살을 앓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있어야 다음해에 좀더 건강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 음도 분명하다. 그때 아이들에게 했던 말은 실은 나에게 한 말이기 도 했다. 살다보면 시시때때로 마음이 뒤엉켜 무거워짐을 느낀다. 그 때 문득 이 가지치기를 떠올려본다. 뭔가 걷어내고 잘라야 할 욕심 이 있지는 않을까….
오경아 작가·가든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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