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시인들은 신발에 흙 한 번 묻히지 않고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니 내 집에서 먹을거리를 해결하던 전통은 사라진 지 오 래고, 대신 슈퍼마켓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 채소와 과일을 한 아름 사온다. 이런 편리함에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맛이 다르다’를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텃밭에서 막 따온 오이의 맛이 이 렇게 달달할 수가! 물기가 송송 맺힌 고추의 맛은 분명 우리가 슈퍼 에서 사먹던 맛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우리 유전자 속에 남 아 있는 기억이 되살아날 수밖에 없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어 베란다 에서 스티로폼 박스에라도 상추를 키우게 된다.
내가 키운 채소의 맛이 달라지는 건 대략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모 든 채소와 과일은 따내는 순간부터 달달한 당분이 녹말로 변화된 다. 유통기간이 길어질수록 천연의 단맛은 사라지고 녹말의 맛만 이 남는다. 또 하나의 이유는 적어도 내가 먹을 채소에는 화학비료 나 살충제, 제초제 등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대량생산의 경우 적은 노력으로 양질의 채소와 과일을 수확하려면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화학제를 쓸 수밖에 없다. 그런데 화학제는 효과가 빠른 반면 단점이 아주 많다. 화학비료를 많이 쓴 땅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 도, 제초제를 쓴 땅이 다음해에는 더욱 척박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 에서다.
지인이 3년 전부터 강원도 횡성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이곳에서 자 기 먹을 것을 심겠다고 시작한 농사에서 요즘 매일 신기한 발견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잡초가 곡식의 영양분을 뺏어먹는 건 맞지만 흙 을 부드럽게 만들어주기도 하지. 곡물도 결국 식물이니까 스스로 경 쟁을 이기고 끝까지 살아남으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데 사람들이 과 보호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모든 식물은 치열한 자연 경쟁에서 끝 까지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노력을 한다. 인 간의 과보호를 받고 크는 곡물은 열매가 더욱 커지고 벌레의 공격 없이 잘 자랄 수는 있지만 분명 맛이 달라진다. 고진감래라는 표현 이 식물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셈이다. 횡성의 지인은 지난해 잡초 를 뽑아주지 않고 유기농 옥수수 재배(?)를 하다가 완전히 망했다. 열매가 형편없이 작아져 먹을거리가 별로 없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가 덧붙이는 말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그렇게 형편없는 옥수수가 정말 맛있어. 내년에 한 번 더 해보려고. 잡초랑 싸워서 이 긴 옥수수니까 내년에 더 씩씩해지지 않을까?”
유기농은 더불어 사는 법을 익히는 일이 먼저일지 모른다. 잡초가 방해된다고 제초제를 쓰면 당장은 곡물의 크기가 커질지 몰라도 땅 속의 모든 익충과 박테리아까지 사라져 결국 땅은 다음해에 더욱 척 박해진다. 잡초가 방해된다고 없애버리는 게 아니라 잡초와 더불어 나의 작물을 잘 키울 수 있는 것이 유기농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나에게 방해가 된다고 그 사람을 제거할 수 는 없다. 그와 더불어 갈등을 줄이면서 잘 살아가는 법을 알아내는 것, 그게 바로 유기농의 삶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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