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을 오른쪽에 두고 차는 전남 광양에서 구례를 향해 달린다. 순간 왼쪽에서 ‘와! 와!’ 흰 꽃이 아우성을 치며 차창으로 쏟아진다. 차를 멈추지 않을 수 없다. 매화다! 꽃구경이라는 단어를 염두에 두 고 나선 길이 아니다. 남도에 일이 있어 가던 길에 만난 우연한 선물 이었다. 걸어놓은 문구를 보니 매화축제는 앞으로 일주일 뒤다. 날 이 따뜻했는지 매화가 일주일 먼저 피었고, 우리 일행은 예측하지 않았던 매화를 그렇게 만났다.
가까이 다가서니 향기가 대단하다. 봄의 꽃이 진한 향기를 품는 건 추위 탓에 큰 꽃잎을 피울 수 없어 향기로 벌과 나비를 부르 기 때문이다. 매화 핀 마을이 향수를 뿌린 듯 은은하다. 매화의 학 명은 ‘Prunus mume’다. 매화의 가까운 사촌 관계로 자두(Prunus persica), 살구(Prunus armeniaca), 아몬드(Prunus amygdalus)가 있다. 모두 딱딱한 돌 같은 껍데기 안에 씨앗을 담고 있고, 그 주변에 과육이 듬뿍 들어 있어 곤충과 동물에게 먹이를 제공한다. 맛있는 과육은 먹고 딱딱한 씨앗은 멀리 다른 곳으로 전달해달라는 뜻이다. 그 뜻에 충실하게 인간도 매화의 열매인 매실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뿐만 아니다. 우리가 매화에 좀더 고마워할 일도 있다. 매화나무는 유럽에서 잘 자라지 않는다. 식물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영국도 일본을 통해 알게 된 이 매화나무를 키우고 싶어 수십 차례 도전을 해왔지만 습기가 강한 영국에서는 매화나무에 균이 생겨 생 존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벚나무·체리·살구나무·자두나무의 재배 종은 우리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어도 매화는 거의 없다.
매화 사랑? 아니 이 정도가 아니다. 중국,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는 매화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 존경하고 흠모한다. 매화에 대한 집착일 까? 정원 공부를 시작한 지 8년이 넘어서는 나도 매화가 온 마을을 뒤덮은 광경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헌에 등장하는 매화에 대한 찬사 를 가끔 삐딱한 시선으로도 봤다. 과장이 심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 건 눈으로 봐야 알 일이다. 아직 땅도 제대로 녹지 않았다. 봄이 오는 가 싶어도 겨울이 악착같이 불쑥 찾아와 몸을 움츠리게 하는 겨울 과 봄의 사이, 이 틈에 매화가 보란 듯이 피어서 우리를 통쾌하게 한 다. 이러니 봄이 와서 매화가 핀 것이 아니라 매화가 핀 것을 알고 봄 이 온다는 시인의 문구가 이제야 마음에 뚝 떨어진다. 꽃구경이 아 니고, 꽃그늘 사이를 걸어봐야 한다. 중국의 한 공주는 그 아름다움 이 빼어났다. 그녀는 매화가 피면 그 사이를 거닐었고, 그녀의 이마 에는 매화 꽃잎이 떨어지곤 했다.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 매화 꽃 잎을 이마와 볼에 장식하는 미용이 발달했다. 이게 우리가 찍는 연 지·곤지의 유래라는 설도 있다.
안타깝지만 화무십일홍이다. 열흘을 하얗게 피우고 나면 매화 꽃잎 이 떨어져내릴 것이다. 남도가 아니라도 좋으니 주변 어딘가에 피었을 매화를 찾아보자. 다만 남도의 매화마을, 귀를 쩌렁쩌렁 울려대 는 트로트 메들리를 꼭 매화꽃과 함께 감상해야 하는지, 매화가 우 리에게 말 걸어오는 소리를 들으려면 우리 소리를 죽여야 한다. 조용 히!
오경아 작가·가든디자이너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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