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과수원으로 오세요./ 석류꽃 아래 촛불과 술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 있겠어요./ 당신이 오신다면 이게 다 무슨 상관 있겠어요.” 내가 사용하는 한 인터넷 블로그의 대문에 페르시아의 위대한 시인이자 철학자였던 잘랄라딘 무하마드 루미(1207~73)의 시를 걸어두었다. 루미는 13세기 페르시아 사람으로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이슬람문화 속에 그의 정신과 철학이 고스란히 흐르고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그의 시는 중동 지역뿐만 아니라 수백 개의 다른 언어로 번역되었고, 2007년 미국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인에 루미가 선정되기도 했다.
루미의 시에 숨겨진 심오한 철학적·종교적 의미를 필자의 실력으로 풀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시에 등장하는 ‘봄의 과수원’은 파라다이스를 말한다. 서양 정원 발달 과정에서 페르시아의 정원은 유럽 전역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조성했던 정원과 서양인들의 정원은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페르시아인들이 꿈꾼 정원은 파라다이스, 즉 이상향이었다. 그들은 척박한 사막의 기후 속에 수십km 떨어진 강으로부터 물길을 끌어올려 자신의 정원에 연못과 수로를 만들고 과실수를 심었다. 나무가 울창하게 스스로 자라고 계곡을 흐르는 풍부한 물의 자원을 지닌 동양(중국·일본·한국)인들이 자연 그 자체를 완벽한 아름다움과 존경으로 볼 때, 그들은 척박한 자연을 이겨내기 위해 울타리를 치고 자신들의 파라다이스를 만들었다. 서로 다른 자연환경이 다른 자연관을 만들어냈고, 이 자연관이 결국 정원의 발달을 만들어낸 셈이다.
페르시아 정원은 중앙에 사각형의 연못을 두고 물길이 십자로 흐른다. 이 십자형의 물길(수로)이 땅을 네 부분으로 가르는데, 이곳에 각종 과실수를 심어 관상과 식용의 목적을 동시에 이뤘다. 정원이 수로에 의해 4개로 등분되는 이 디자인을 흔히 ‘차하바그’(Chaha Bagh)라 하는데, 이후 서양 정원 디자인의 원형이 되어 수천 년 동안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도로 발달했던 페르시아의 정원은 지금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그 흔적을 후세로 이어진 스페인의 알람브라 궁전과 인도 등의 무어(Moor) 정원에서 찾을 뿐이다.
그렇다면 역사학자들은 남아 있지도 않은 페르시아 정원을 어떻게 짐작할까? 그것은 바로 ‘카펫’ 때문이다. 직조 기술이 발달했던 페르시아인들은 카펫을 만들며 그 안에 그들이 조성한 정원의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결론적으로 정원은 사라졌지만 카펫을 통해 페르시아인들의 정원을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는 셈이다. 이들이 카펫 안에 정원을 담은 이유는 정원을 집 안으로 데려가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게 분명하다. 집 안에 페르시아풍 카펫이 있다면 한번 살펴보자.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식물의 문양이 그려져 있는지. 혹시 운이 좋다면 4개의 물길로 갈라진 차하바그의 페르시아 정원을 만날지도 모른다.
오지 않는다고 투덜거렸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봄이 완연해졌다. 카펫 속에 정원을 담아 집 안으로 들여갔던 페르시아인들의 사랑에 우리라고 뒤질 것도 없지 않을까? 화분 하나라도 내 집 안에 들여놓는다면 그곳에 봄이 있음을 실감하게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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