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서 나비 애벌레를 만났다. ‘헉’ 놀라 순간 뒷걸음질을 쳤다 다시 조심스럽게 가까이 다가가본다. 잘 먹어서인지 제법 통통하고 줄무늬가 선명해서 나중에 멋진 나비가 될 듯싶다.
정원 안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많은 생명체가 식물과 함께 더불어 산다. 얼핏 보면 이들은 서로를 해치는 듯도 싶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듯도 한데 그 피해자는 대강 식물이다. 그런데 방금 전 내가 본 나비 애벌레만 놓고 생각해봐도 조금은 다른 상황이 짐작된다. 나비 애벌레는 분명 식물의 잎을 갉아먹으며 성장하니 식물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것은 맞다. 그런데 애벌레에서 번데기를 거쳐 드디어 나비가 되면 이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나비는 꽃을 피운 식물의 암술과 수술 사이 달콤한 즙을 빨아먹기 위해 꽃과 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자기도 모르게 식물의 수분을 돕게 된다. 결론적으로 나비가 식물 잎을 갉아먹어 피해를 주지만 이 나비 덕분에 식물은 그들의 최종 목표인 씨앗을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식물은 좋아하지만 벌레도 싫고 곤충도 싫다는 사람이 많다. 실은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벌레나 곤충을 식물만큼 좋아하며 반가워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이건 우리의 입장이고 식물과 곤충은 그 관계가 다르다. 식물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이유는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을 갉아먹기도 하고 해치기도 하는 곤충을 부르기 위해서다. 오죽하면 일부 난과 식물 중에는 노골적으로 곤충의 암컷 모양으로 꽃을 피워 수컷이 착각하고 찾아오도록 만들기도 한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뿐만이 아니다. 식물이 만들어내는 향기도 우리가 뿌릴 향수의 원료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분을 도와줄 곤충을 부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식물은 벌과 나비가 좋아하는 꿀벌 향을 만든다. 다만 아마존의 식물 중 파리가 수분 매개자인 경우에는 썩은 고기 냄새를 피우기도 한다. 이 또한 수분에 파리가 필요해서일 뿐, 우리 코가 어떤 냄새를 맡는지는 중요치 않다.
정원에서 일하다보면 괜히 인간이 끼어들어 자연의 일을 간섭하며 흔들어놓고 오히려 피해를 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종종하게 된다. 정원 속은 이 지구의 자연을 축소해놓은 듯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느끼게 한다. 그 안에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서로에게 어쩔 수 없는 아픔을 주기도 하지만 결국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생의 현장이 있을 뿐이다.
오경아 작가·가든디자이너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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