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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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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애쓰며 힘겨워하지 말라

자연은 어떻게 소통하고 있나
등록 2013-04-19 17:48 수정 2020-05-03 04:27
오경아 제공

오경아 제공

2013년 봄, 남도에서 열리는 정원행사 때문에 유난히 장거리 여행이 많다. 작은딸이 종종 동행한다. 8년간의 영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의 대학생이 된 딸은 요즘 좌충우돌이다. 즐겁기도 하지만 힘들기도 하 고, 친근하기도 하지만 아주 낯선 혼동의 시간인 듯싶다. 오랜만에 단둘이 차 안에 5시간 넘게 갇혀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작은딸이 문득 나에게 이런다. “나 영국에서 고3일 때 엄마가 정원에 참 많이 데리고 다녔는데, 시험일이 코앞인데 늘 왜 그랬어?”

생각해보면, 난 내일모레가 시험이라고 숨이 넘어가는 딸들을 데리 고 영국의 정원들을 참 많이 찾아다녔다. 특히 집 근처의 하이드홀 (Hyde Hall)은 단골 정원이었다. 그곳에서 우린 산책도 하고, 밥도 먹 고, 차도 마셨다. 영국 유학 생활 7년 동안 나는 본의 아니게 그곳 사 람들이 말하는 ‘싱글맘’ 신세였다. 게다가 아이들은 한창 10대 청소 년기를 보내고 있었고,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국제전화로 상담을 했다. 문제는 늘 대화였다. 서로 이야기 를 나누다보면 풀리는데 대화를 시작하기가 힘들었고, 또 대화가 너 무 많아져 잔소리가 되면 아이들의 거부 반응이 심했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식이 정원을 산책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곳에서 소통의 창구를 찾는 것이었다. 다행히 이 방식이 아이들에게 좋은 효과를 가져왔다. 아름다운 꽃을 보며 신경질을 부리는 사람이 없 고, 꽃 향기를 맡고 새소리를 들으며 울분을 토하는 사람도 없다. 정 원이라는 공간 속에 들어가면 마음이 순해지고, 흙탕으로 불투명했 던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생각이 투명해지는 게 참 좋았다.

정원이라는 공간은 자연이 서로에게 무엇인가가 되어 어떻게 소통 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흙은 식물을 키우고, 식물은 흙 의 영양분으로 성장하고, 그리고 다시 죽어 흙의 거름이 된다. 흙이 식물을 키울 수 있는 건 흙 속 수백만 미생물의 분해작용 때문이다. 살아 있는 것이 죽어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 만 자연의 시각에서 보면 모든 것이 일시적이고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크나큰 축복이다. 이 원칙에서 어긋나 섞지 않겠다고 고집하면 결국 지구는 쓰레기 바다가 될 게 뻔하다.

곤충의 애벌레는 식물의 잎을 갉아먹고 자란다. 하지만 다 자란 곤 충은 식물의 수분을 돕고 식물이 씨앗을 맺어 삶을 마감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자연은 어느 것 하나만 두드러지게 1등을 하고 나머지 는 외롭고 쓸쓸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 아름다운 공생의 삶을 산 다. 그래서 장미도 아름답지만 민들레도 아름답고, 참나무도 소중 하지만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도 없이 그 밑을 지키는 잡목도 소중 하다.

시험에 임박해 아이들이 힘겨워할 때 시간을 잘라내 정원으로 아이 들을 데리고 나간 것은, 자연이 그러하듯 우리 삶도 그런 것이라고 너무 많이 애쓰며 힘겨워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물론 말로 그 의미를 다 전달하긴 역부족이었겠지만 아이들이 분명 정원에서 내가 느꼈 던 것을 느꼈으리라고 믿어본다.

오경아 작가·가든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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