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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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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닭다리 같은 온실

밥 얻어먹는 ‘집사’의 아내를 위한 선택, 지어만 놓고 방치하면 반재활용센터가 되고 마느니
등록 2013-07-18 17:35 수정 2020-05-03 04:27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내는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 “식물과는 그리 좋은 사이가 아니었다”고 말한다면 그건 완곡어법이 아니라 아부에 속할 정도였다. 아내의 주특기는 ‘선인장 물 안 줘 고사시키기’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제 손목에 파스를 붙일 정도로 호미질하고 김매는 아내를 보면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런 아내의 영원한 향수가 멋진 유리 온실이다. 하지만 아내의 상상을 현실로 구체화해야만 하는 집사인 나의 선택은 정원 잡지에 나오는 판타지 공간이 아닌 비닐하우스였다.

온실은 지어만 놓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관리를 잘해야 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재활용센터같이 돼버린 창고를 정리했다.강명구 제공

온실은 지어만 놓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관리를 잘해야 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 재활용센터같이 돼버린 창고를 정리했다.강명구 제공

한 10여 년 경험해보니 비닐하우스 온실이 판타지 공간으로 변신하는 환상의 시기는 불과 늦겨울부터 초봄 사이 2~3개월이다. 오래전 심어놓은 동백이 화려하게 피고 상추며 쑥갓이 푸름을 발하는 2월 말∼3월 초 온실은 적당한 습도와 햇빛으로 한낮에는 우리 집 강아지 동동이가 늘어지게 기지개 켜는 천국으로 변한다. 그러나 4월이면 벌써 더워지기 시작해 5월이 지나 한여름이 되면 발길이 뜸해지다가 9∼10월 찬바람이 좀 불어야 다시 발길이 잦아진다. 시골분들에게 이른바 ‘하우스 농사’는 이미 필수 불가결이 된 지 오래지만 반쪽 시골생활을 하는 얼치기 농사꾼인 나에게 온실은 ‘농사’보다는 모종하기며 소소한 푸성귀 재배며 겨울 화초 피난처로 유용하다. 더 나아가 연장 중간 집합 장소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늦겨울∼초봄의 눈사치에 몸사치 하는 곳이니 집약적으로 즐기는 시절은 짧아도 계륵보다는 닭다리에 가깝다.

그러나 명심하시라. 온실은 지을 때도 많이 궁리해야 하지만 지어만 놓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관리를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半)창고에 반재활용센터 되시겠다. 나는 온실을 지을 때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두 권의 책에 의존했다. 짓는 것은 스콧 니어링의 책 <the good life>(‘조화로운 삶’이라고 번역돼 있다)에 나와 있는 지침을 대체로 따랐고, 지은 뒤 운용은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 주문한 엘리엇 콜먼의 책 <four season harvest>(‘사계절 수확하기’)를 따랐다. 먼저 지을 때 주의사항. 하나, 남향으로 지어야 한다. 둘, 북쪽은 막혀야 한다. 나의 경우 책에 나온 대로 온실 북쪽 벽을 돌 축대로 쌓아서 낮은 겨울 해로 달구어진 돌이 밤 사이 발열체 구실을 하도록 했다. 셋, 서편도 흙으로 넉넉히 단열해 일찍 지는 겨울 해를 대비했고 온실 서편 밖에는 활엽수를 심어 늦게 지는 여름 해를 피하도록 했다. 이 세 지침은 화석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을 이용해 온실을 짓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 밖에 경험상 권하고픈 사안을 소소하게 적으면 다음과 같다. 온실 천장은 높아야 답답하지 않다. 나의 경우 450cm는 족히 된다. 그 대신 천장은 반투명 단열재로 보온에 신경 썼다. 온실 뼈대인 파이프는 많은 눈에 대비해 촘촘히 배치했고, 오래가는 장수비닐을 두 겹으로 치고 3~4년에 한 번씩 갈아주었다. 온실의 3분의 1 정도는 벽돌을 깔거나 나무 데크로 치장해 편안한 휴식 공간이 되도록 했고, 주변에 선반을 마련해 연장도 가지런히 정리했다. 그리고 겨울 동안 물 줄 것에 대비해 남쪽 구석에 커다란 플라스틱 저수조를 마련했다.
10여 년 전 나는 가로 4m, 세로 9m로 약 11평의 온실을 오랜 일 친구 손준섭과 함께 직접 자재를 구입해 일당 포함 60만원에 이틀에 걸쳐 지은 기억이 난다. 아직도 튼튼하고 적어도 지나온 기간만큼 튼튼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아내의 하루 세끼 맛난 밥에 기대어 살기에 내게 작업실이 있듯이 아내에게 멋진 유리 온실을 지어주고 싶다.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four></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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