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이 1년 같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었다. 지 난 7월8일 아침, 제주를 출발해 김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시아나항공 214편 여객기 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하던 중 사고가 발생 해 중국인 2명이 사망하고 180여 명이 다쳤다는 안타까 운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이었기 때문이다. 날씨마저 도 와주지 않았다. 제주에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터라 비행 기는 이륙하자마자 롤러코스터를 탔다. 아침잠이 싹 달 아나고,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히 배어들었다. 승객의 절 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인 관광객들도 불안했는지 비 행기가 출렁일 때마다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몇 몇은 구토도 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비 행기 사고를 경험한 이들이 겪고 있는 일종의 ‘외상후 스 트레스’다. 비행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신적·육체적 거 부반응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처럼의 여 름휴가 계획을 물리자니 아깝다. 회사에서 가라는 출장 을 뭉갤 배짱도 없다. 이럴 땐 비행기를 속속들이 들여 다보는 게 막연한 불안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시시콜콜 비행기 상식을 죄 담아봤다.
좌석가장 안전한 좌석은 어디일까. 비싼 일등석과 비즈니 스석이 있는 앞쪽일까, 엔진 등 중요한 장치가 몰려 있어 튼튼하게 설계된 날개 쪽일까. 2009년 영국 항공청의 의 뢰로 그리니치대학이 연구한 결과가 있다. 과거 105건의 항공기 사고에서 살아남은 승객 2천여 명의 좌석표를 분 석한 자료다. 가장 생존율이 높은 좌석은 비상구 출구 주변의 5줄이었다.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남들보다 빨 리 비행기 밖으로 빠져나오는 데 유리해서다. 같은 이유 로 창가 쪽보다는 통로 쪽 좌석이 생존율이 높았다. 비행 기가 추락하면 무거운 앞쪽부터 떨어지는 탓에 꼬리 쪽 도 상대적으로 덜 위험했다. 그러나 통계는 그저 통계일 뿐이다. 대한항공의 한 관계자의 설명은 이렇다. “생존 확률이 사고 유형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어느 좌 석이 특별히 안전하다고 할 수 없다. 일등석과 비즈니스 석이 앞쪽에 있는 건 엔진 소음의 영향을 가장 덜 받아 조용하고 안락하기 때문이다.”
비행의 즐거움은 좌석의 편안함과 비례한다. 편안함 을 느끼려면 무엇보다 좌석의 피치(Pitch·앞뒤 좌석 간 간격)가 넓어야 한다. 현재 항공사들이 자율적으로 지키 고 있는 최소한의 피치는 28인치다. 이코노미석의 피치 는 항공사에 따라 29~35인치인데 성인 남성은 다리를 제대로 뻗기도 어려울 정도다. 일등석(78~89인치)과 비 즈니스석(40~73인치)은 이보다 2~3배 넓어 누울 수도 있지만, 주머니 가벼운 이들에겐 어림도 없다. 그나마 이 코노미석에서 숨통을 틀 수 있는 곳이 비상구 좌석이다. 그러나 앞뒤 간격이 넓은 이 좌석을 차지할 행운이 모두 에게 주어지는 건 아니다. 법에 따라 비상구 좌석엔 비상 상황 발생시 승무원을 도와 승객들의 탈출을 도울 수 있 는 신체적 능력과 의사를 가진 성인만 앉을 수 있다. 한 국어나 영어를 못하거나 유아를 동반한 승객도 제외된 다. 비상구 좌석은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약을 받지 않고 직원이 탑승 수속을 하며 직접 배정해주는 건 이러한 기 준을 따져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복불복인데다 가끔은 추가 요금을 내야 하는 비상구 좌석과 달리, 숨겨진 보 물과 같은 좌석도 있다. 맨 뒷좌석이다. B747 등 대형 항 공기는 대개 좌석이 3-4-3으로 배열되는데, 맨 뒤쪽에 2-4-2로 바뀌는 부분이 있다. 두 좌석만으로 이뤄진 자 리는 다른 좌석보다 1인치 정도 넓고, 창가 승객이 통로 로 나오기도 편하다.
이착륙‘마의 11분(Critical 11 minutes)을 조심하라.’ 비행기 승무원들 사이의 격언이다. 기체가 땅에서 힘껏 떠오르 는 이륙 뒤 3분과 땅에 급격히 가까워지는 착륙 전 8분 동안은 조종사가 위험한 상황을 인지해도 즉각 대처하 기가 어려워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으니 각별히 주의 하란 의미다. 따라서 이착륙을 할 때 비행기는 비상상황 에 대비한 태세에 들어간다. 일단 기내 조명이 어두워진 다. 비상사태로 기내 전원 공급이 끊겨 조명이 꺼질 가능 성에 대비해 승객의 눈을 어둠에 미리 적응시키기 위한 조처다. 곤히 잠든 승객을 깨워 등받이를 세우고 테이블 을 제자리로 하며 창문 덮개를 올리게 하는 것 역시 혹 시 일어날지 모를 사고를 위한 준비다. 창문을 열어야 승
객이 비행기 밖에 벌어진 위험한 상황을 재빨리 인지할 수 있고, 좌석 앞 공간을 최대로 확보하고 있어야 신속히 탈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혹 비행기가 착륙하는 순간 기체가 유난히 덜컹거릴 때가 있다. “초보 조종사 아니냐” “조종사가 졸았느냐”는 의심이 든다.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조종사가 의도한 ‘충격 유발식 착륙 방법’(펌랜 딩·Firm Landing)을 쓴 경우다. 비나 눈이 내리거나 비 행기 옆·뒤쪽에서 바람이 강하게 불 때 제동거리를 짧게 하기 위해 거칠게 착륙하는 방식이다. 그렇지 않으면 활 주로를 이탈할 수도 있다. 반대로 모든 상황이 좋을 때는 부드럽게 착지하는 ‘소프트랜딩’(Soft Landing)을 한다.
만약 펌랜딩을 하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나쁘면 출발 전 지정해둔 목적지 주변의 ‘교체공항’에 착륙한다. 교체 공항은 엔진이 2개인 항공기가 비행 도중 하나의 엔진이 꺼지더라도 최대 3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위치 해야 한다. 미주 등으로 가는 비행기가 최단 직선으로 운 항하지 않는 건 교체공항을 확보하기 위해 육지를 따라 비행하기 때문이다.
운항 중인도 영화 를 보면 주인공이 막 이륙하려 는 비행기 안에서 친구의 전화를 받는다. 그러고는 옛 친 구를 만나기 위해 실신한 척 연기해 바깥으로 실려나온 뒤 도망친다. 꾀병이 아니라면 현실에서도 가능한 상황이다. 원칙적으로는 승객이 개인적 이유로 비행기에서 내리는 것은 금지된다. 그러나 항공사는 승객이 갑자기 아프거나 가족이 사고를 당한 경우 등에 한해 승객을 내 려주고 있다. 그러나 과정은 까다롭다. 기장은 공항 관제 실로 통보한 뒤 비행기를 탑승구로 되돌려야 하고, 모든 승객은 보안 점검을 위해 수하물·소지품과 함께 내렸다 다시 타야 한다. 이 과정에 320만원가량(B747-400 기 준)이 들어간다.
종종 비행 중 문을 열어달라며 소란을 피우는 승객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천하장사인 승객도 비행기 문을 열 기란 불가능하다. 외부 대기압과 기내 압력 차이 때문에 문을 개방하려면 14t의 힘이 필요하다. 물론 비행기가 외 부 기압과 비슷한 고도로 날고 있다고 해도 잠금장치 때 문에 문을 열 수는 없다.
대부분의 항공기에는 일등석은 승객 10명당 1개, 일반 석은 35명당 1개꼴로 화장실이 설치돼 있다. 여기서 생 긴 오물은 어디에 버려지는 것일까. 한때 국토교통부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황갈색 알갱이는 비행기에서 버리는 인분이 아니라 꿀벌 똥’이라는 내용을 홍보한 적이 있을 정도로 오해가 많은 부분이다. 일단 세면대에서 사용한 물은 비행 중 항공기 외부로 배출된다. 그러고는 곧바로 결빙돼 지상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변기 오물은 대부 분 ‘공기 흡입식’ 방식으로 처리된다. 물탱크의 깨끗한 물 이 ‘쏴아~’ 소리를 내며 변기의 오물을 씻어낸다. 그 뒤 물과 오물은 비행기 맨 뒤쪽 객실 아래 화물칸의 2~4개 탱크에 저장됐다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수거된다.
아직 국내 비행기에선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 러나 대부분의 미국 항공사들은 와이파이 서비스를 제 공하고 있다. 지상에서 최고 4만 피트 이상의 높이까지 쏘아올려진 무선데이터를 항공기가 잡아내 다시 기내의 승객들에게 제공하는 방식이다. 미국에는 대륙 전체에 무선데이터를 쏘아올리는 기지가 널려 있는 덕분이다. 과거 국내 항공사들도 인공위성을 활용해 기내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한 적이 있으나 이용자가 적어 곧 접었다. 대한항공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국은 국토 면적이 좁아 미국과 같은 와이파이 방식의 인터넷 서비스는 비효율적 이고, 위성으로는 전송속도가 256K밖에 안 돼 너무 느 리다. 전송속도가 승객이 답답해하지 않을 정도가 될 때까지 추세를 지켜보고 있다.”
승무원하늘길에서 승객의 생명을 책임지는 승무원은 어떻게 정해질까. 항공승무원(조종사)은 기본적으로 기장과 부 기장이 한 팀으로 움직인다. 부기장석에는 대개 10년차 이 내, 기장석에는 10년차 이상(대형 기종은 15년차 이상) 조 종사가 앉는다. 조종사들의 근무시간은 법적으로 8시간 이상을 넘지 못한다. 인천에서 미국 뉴욕까지 13시간을 비행해야 한다면 두 팀이 함께 근무한다. 이착륙을 담당 하는 책임기장과 부기장이 보통 5시간 정도 비행한 뒤 교 대팀에 조종간을 내주고 6시간30분 정도 쉬다가 착륙 1시 간30분 전에 다시 나와 착륙 준비를 하는 식이다. 이때 혹 시 모를 식중독 등에 대비해 두 팀은 다른 기내식을 먹는 다. 근무를 하더라도 비행 내내 긴장 상태로 조종간을 잡 고 있거나 계기를 조작하는 건 아니다. 요즘 비행기는 정 확한 좌표만 컴퓨터에 입력시키면 자동조종장치에 의해 목적지까지 날아간다.
객실승무원은 법적으로 비행기 좌석 50개마다 1명씩 탑승하도록 돼 있다. 승객 수와는 상관없다. B747-400 항공기가 좌석이 370~380석 정도니 최소 8명의 승무원 이 탑승해야 한다. 그러나 장거리 운항에는 다양한 서비 스 제공을 위해 16~18명이 투입된다.
비행기 수명자동차처럼 항공기에도 정해진 수명은 없다. 제작사인 보잉사의 경우 20년 운항했거나 2만 회 착륙(또는 6만 시 간 비행)하면 정밀점검을, 30년 운항했거나 3만 회 착륙 (11만5천 시간 비행)하면 특별점검을 받게 하는 규정이 있는 정도다. 수명을 좌우하는 건 지속적인 관리다. 항 공사들은 탑승객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물론 고가(보잉 시리즈 기준으로 한 대당 840억~3953억원)의 자산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정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정비 는 비행기를 살피는 정도에 따라 이착륙 전후, 1~2개월, 1~2년, 5년에 한 번씩 이뤄진다. 더이상 날 수 없게 된 비 행기는 프랑스의 폐기장으로 향한다.
비행기는 수명을 다하기 전까지 엄청난 기름을 쓴다. 항공류는 등유에 각종 첨가제를 섞어 만들어지는데, 대형 기종인 B747-400이 인천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까 지 운항하면 약 670드럼(13만4천ℓ)이 들어간다. 대형 세 단인 에쿠스 1675대에 ‘만땅’을 채울 수 있는 정도다. 돈 으로 따지면 1억1800만원어치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가 는 데도 에쿠스 68대 분량인 62드럼(1만2400ℓ)이 들어 간다. 이렇게 비싼 기름을 마구 버릴 때도 있다. 착륙할 때 허용된 중량을 맞추기 위해서다. B747-400은 착륙 할 때 비행기 무게가 이륙할 때보다 100t 가까이 적어야 한다. 티웨이항공 관계자의 설명이다. “만약 정해진 대로 무게를 줄이지 못하면 연료를 쓰기 위해 목적지 주변을 날아다니거나 연료를 밖으로 뿜어내야 한다. 연료는 휘 발성이 강해 고공에서 방출하면 곧바로 증발하는 만큼 땅이나 바다로 떨어질 염려는 없다.”
사고 대처200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최대 규모 여객기인 A380 을 두고 실험이 하나 진행됐다. 비상상황에서 승객 853 명과 승무원 20명이 안전하게 탈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 을 측정하는 실험이었다. 사고 때처럼 비상등을 제외한 전원은 차단됐고, 비상구 중 절반은 닫혀 있었다. 탑승 자 전원은 78초 만에 안전하게 비행기 밖으로 대피했다. 아주 짧은 시간인 것처럼 보여도, 실제 미국와 유럽 등은 비상상황에서 탑승객이 탈출하기까지 90초 이상 걸릴 정 도로 기내가 복잡하게 제작된 비행기는 상업운송에 투입 되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다. 물론 ‘탈출 제한시간 90초’는 승객이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는 경우를 전제로 한다.
비상상황에 승객이 대처하는 법은 이렇다. 일단 짐은 무조건 버린다.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고에서처럼 일 부가 캐리어나 핸드백 등을 챙겨 나오려 한다면 탈출 시 간이 지연돼 인명 피해가 커질 수 있다. 비행기가 바다 에 추락하면 구명조끼는 입되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탈 출 직전에 부풀린다. 기내로 물이 차오르는데 부푼 구명 조끼를 입고 있으면 비행기 동체에 붙어 함께 가라앉을 수 있다. 비행기가 비상착륙을 했을 때 몸이 튕겨나가지 않도록 좌석벨트는 꼭 맨다. 착륙 직전에는 잠에서 깨고 스트레칭을 하거나 통로를 5분가량 걸어다닌다. 비상사 태를 알아챘더라도 ‘이코노미 증후군’으로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재빨리 탈출하기 어렵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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