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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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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2013년 6월5일의 택시 블루스
등록 2013-06-15 20:18 수정 2020-05-03 04:27

택시를 탔다. 기사님께 “요즘 어떠시냐”고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말이 안 나오죠”. 백미러에 비치는 기사의 이마에 주름이 깊었다. 에어컨 바람이 차가워 챙겨입은 소매가 긴 셔츠는 종일 마주하는 햇빛 탓인지 누렇게 바래 있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한겨레 정용일 기자

“경기 나빠지면 어디서 줄이겠어요?”

서울시는 6월3일을 ‘택시의 날’로 정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개인·법인 택시 노동자에게 정책 제안을 듣고, 현장에서 직접 택시를 타 현실적인 문제도 들었다. 그리고 그날, 늦어도 9월 초까지 택시요금 인상 여부와 인상 폭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택시법’(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택시업계를 둘러싼 목소리는 복잡하지만, 고된 노동에 비해 수입이 적은 택시업계의 짙은 불황은 정부와 시민사회 모두 공감이 깊다. 전국 택시업계 종사자는 30만 명, 그중 서울의 택시 운전사는 7만여 명. 누군가에게는 30만 표심, 누군가에게는 시민의 발, 누군가에게는 고급 교통수단, 누군가에게는 여론의 척도라지만, 평균연령 60살에 근접한 이들은 무엇보다 이 시대의 아버지들이기도 하다. 제대로 귀기울여보지 못한 아버지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이태원에서 광화문, 동대문, 서울역, 신사역으로. 6월5일, 택시가 많이 모이는 동네를 따라 서울을 돌았다.

공덕동 ▶ 남산도서관 “여기를 지나갈 때면 어찌나 초콜릿 냄새가 진한지,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곤 했죠.” 서울 용산구 삼각지 고가도로를 넘어가는 길에서 택시 운전사의 표정이 느닷없이 달콤해졌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오리온제과 본사가 있다. 지금은 창문을 내려봤자 매연만 그득한 그 길이 한때 진한 초콜릿 향으로 채워지던 때가 있었다. 서울 땅값이 지금만큼 뛰지 않았던 시절, 그 자리에 오리온제과 공장이 있었다 한다. 그 앞을 지날 때면 초코파이 만드는 냄새가 진동했단다. 달콤한 시절은 아득해졌고 시절은 길가의 매연만큼 팍팍해졌다. “택시는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이에요. 사람들이 어디에서 줄이겠어요. 외식 안 하고, 택시 안 타고 그러는 거지. 요즘 뭐가 제일 힘드냐고요? 무엇이고 나발이고 돈벌이가 잘돼야지. 돈벌이가 잘되면 점심을 굶어도 배고픈 줄 몰라. 근데 돈벌이가 안 되면? 배가 더 고프고 피곤하기도 더해요.”

남산도서관 ▶ 광화문 점심 무렵 남산도서관 앞에서 광화문에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렸다. 광화문을 향하는 버스가 두 대나 지나가는데도 빈 택시는 오지 않았다. 남산을 따라 난 소월길에는 택시가 흔치 않다. 번잡한 길이 아니다보니 손님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인구 1천 명당 택시 대수가 7대다. 도쿄 5대, 뉴욕 1.7대, 런던 2.1대와 견주면 수요에 비해 택시가 많은 편이다. 그럼에도 한낮에 10분이 넘도록 택시를 기다려야 했다. 동네에 따라 택시 대수도 빈익빈 부익부가 있다. 이날 통인시장에서 동대문시장까지 기자를 태워준 김아무개 기사는 “모두가 강남을 향한다”고 말했다. 회사가 밀집해 있는 지역과 번화가 등에 유동인구가 많고 일반 주택가에서도 다른 곳에 비해 이용 승객이 많기 때문이란다. 기사들이 기피하는 지역은 외곽의 번화가가 가깝지 않은 오래된 주택가다. “손님을 원망하는 경우도 많아요. 골목 구석구석 들어갔는데 익숙지 않은 길이라 곤혹스러울 때도 많고, 대체로 그런 동네는 빈 차로 나와야 하니 수지타산도 안 맞고.” 우리는 늦은 밤 깊은 골목까지 들어가기 위해 택시를 타지만 기사들은 ‘제발 골목만은’이라는 마음으로 손님을 맞는다.

6월5일 길에서 만난 택시 기사들은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차 안에 머물고 있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6월5일 길에서 만난 택시 기사들은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차 안에 머물고 있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200만원은 돼요, 나처럼 일요일에 일하면”

하지만 오늘도 골목을 누비기 위해 부지런히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았다. 남산도서관에서 광화문까지 기자를 실어준 이봉안(70)씨는 개인택시 운전 14년차다. 김포공항 인근에 사는 그의 출근지는 몇 년째 김포공항이다. “아침 일찍 나가요.” “일찍 몇 시쯤이오?”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새벽 4시쯤”. “그때쯤 나가서 차 대놓고 서너 시간 놀아요. 나처럼 일찍 나온 택시 기사가 많아. 같이 공항 한 바퀴 돌면서 운동하고, 직원 식당에서 4천원 주고 식권 사서 밥도 먹고, 여럿이 커피도 한 잔씩 마시고. 아침 7시45분에 국내선 첫 비행기가 내리고 나면 8시나 돼야 손님이 나와. 그때부터 일 시작하는 거지.” 건설회사에서 30년간 일하고 퇴직한 뒤 개인택시를 사서 운전하기 시작했다는 이씨는 아침 운동 겸 일을 나올 만큼 비교적 마음의 여유가 있는 편이다. 하지만 하루 종일 일해도 오히려 10여 년 전보다 벌이가 좋지 못하니 요즘은 마음이 영 팍팍하다. “2001년 2월부터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한 달에 250만원 정도 집에 갖다줬어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뭐…. 손님은 없고, 택시는 많아지고, 연료비는 3~4배 오르고. 건설회사에서 일할 적에는 철야근무를 할 때도 있어 힘들었지만 그래도 재미가 있었어요. 택시 운전을 하는 지금이 더 힘든 것 같아요.” 새벽 4시에 출근하는 이씨는 밤 8~10시에 퇴근한다. 집에 도착해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면 하루가 마무리된다. 개인택시라 이틀 일하고 하루를 쉬긴 하지만 일하는 날에는 하루의 대부분을 택시에 머무는 셈이다.

통인시장 ▶ 동대문시장 광화문에서 조금 더 가 배화여대 인근에서 내렸다. 골목을 걸어 통인시장 입구로 나와 김아무개씨가 모는 택시를 탔다. 법인택시 경력 10년의 김아무개씨는 앞서 이봉안씨보다 더 오랜 시간 택시에 머문다. 법인택시를 모는 김씨는 한 달에 하루만 쉰다. 그 하루도 회사 전체가 쉬는 날이라 쉰다. “택시 기사 힘들다고, 150만원 벌기도 어렵다고 하는데, 열심히 하면 200만원은 돼요. 대신에 나처럼 일요일에도 일해야 하겠지만. (웃음)”

김씨는 일하지 않아도 되는 일요일에도 꼭 출근한다. 일요일은 사납금 대신 회사에 책임비 3천원만 내고 그날 수익 전액을 가져갈 수 있다. 일종의 특근비인 셈이다. 김씨의 생활은 10년째 ‘식스 투 식스’다. 아침 6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한다. 사납금을 맞춰 내고 교대시간만 지키면 몇 시에 출근하든 자유지만 출근 시간을 놓치면 그날은 적자를 내기 십상이란다. “그날 수입의 30~40%는 아침 시간 2~3시간 안에 결판이 나요. 주로 출근하는 손님들 싣고, 운 좋으면 그때까지 술 마시고 나오는 사람들 싣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장거리거든요.” 그렇게 해서 하루에 13만원 이상 벌면 적정 수익이 난다. “사납금 10만원 내고, 가스비 내고, 밥 먹고 한 다음에 그래도 2만~3만원은 집에 들고 가야지.” 그런 김씨는 오히려 요금 인상이 반갑지 않단다. “개인택시랑 사정이 달라요. 요금이 오르면 사납금도 같이 오를 테고, 손님은 떨어질 테고, 나는 더 힘들어질 수도 있어요.”

노들섬의 어정쩡하게 서 있는 사람들

동대문시장 ▶ 신사동 말하기 곤혹스러운 문제들도 기사를 괴롭혔다. 동대문시장~신사동까지 함께했던 하연희(70)씨는 화장실 문제가 힘들다고 했다. “외진 곳에서 노상방뇨하는 운전자가 많아요. 차가 길게 늘어서 있는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서 볼일 보기도 하고…. 제1한강교 중지도(노들섬) 같은 데 가봐, 거기 차 세워놓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기사들 다 소변 보고 있는 거예요. 화장실을 하나 만들어주면 좋을 텐데.”

하씨는 요 근래 유독 손님이 무섭다. “별 손님이 다 있죠. 주말 아침에는 가다보면 술 취한 젊은이가 많아요. 그 친구들 태우면 횡설수설하고 난리예요. 전에 이런 손님이 있었어요. 다 왔습니다, 하니까 안 내려. 주머니 막 뒤지고 그러는데, 돈이 없는 거지. 하는 얘기가 우리 애인을 부르면 난폭하고 까다롭다. 파출소 가자고 하면 그래, 가래. 그렇게 실랑이하다 그냥 내리는 거예요. 비 오는 날 공항 근처에서 탄 한 손님은 차 좌석에 물이 뚝뚝 떨어지게 물건을 갖고 있길래 조심해달라고 하니까 불친절하다고 신고하고, 강남역에서 논현까지 가는데 손님이 내려달라는 곳이 차 못 대는 곳이라서 안 된다고 그 전에 내려주니까 바로 도중하차라며 신고하고, 이런 식이에요.”

“물론 좋은 손님도 많죠.” 하지만 어떤 손님이 택시의 뒷좌석에 앉을지는 그날의 운에 맡겨야 한다. 서울의 택시 운전사들은 이 시대의 ‘김첨지’이기도 한 걸까. 통인시장~동대문시장에서 만났던 김씨가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날 수입은 운때가 맞아야 해요. 그래서 운수업이기도 한 거야. 운이 좋은 날은 이상하게 계속 운이 좋거든. 사람 뜸한 주택가 골목에서 갑자기 손님이 나와서는 공항에 가자고 하지를 않나. 오늘은 그래도 경기도 남양주 진접까지 갔다오느라 평타를 쳤지. 강남에 있는 아들이 아버지한테 선물한다고 휴대전화를 실어 보냈어요. 요금 3만원 정도 나오는데 퀵서비스보다 적게 들 것 같다면서. 가끔 이렇게 사람 없이 물건만 태우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운 없는 날은 사람 많은 강남역 근처를 돌아다녀도 손님이 없어.”

신사동 ▶ 이태원 그러니까 이런 날도 있는 거다. 신사동에서 이태원까지 기자를 실어준 김정기(50)씨는 6월5일 새벽 1시50분부터 3시40분까지 강남과 강북을 오갔지만 손님을 단 한 명도 태우지 못한 채 결국 포기하고 퇴근했다고 한다.

밤 9시 서울역 뒤편 서부역 쪽 택시 정류장에서 대기 중이던 조아무개(46)씨는 자주 서울역 앞에 차를 대고 서 있다. 조씨는 자신의 운에 기대를 걸며 멀리 가는 손님이 타길 기다리곤 한다. 손님을 실어 돌아올 수 있는 강남역이나 광화문 등지로 가달라고 하면 더 반갑다. “오래 기다렸는데 가까이 가는 손님이 타면 어떠냐”는 질문에 조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죠. 승차 거부를 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손님 찾느라 여기저기 다니면서 가스 쓰는 것보다 여기서 기다리는 편이 나아요.” 조씨는 야간 영업이 힘들지만 수입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낮 시간 영업만 해서는 수입이 안 돼요. 낮에는 좀 편한데 돈이 안 되고, 밤은 돈은 되는데 몸이 고되고 그런 거지.” 가장 힘든 것은 술 취한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 그런데 이상한 손님은 낮이나 밤이나 다 있단다. 이런 환경에서 사납금을 맞춰야 하는 법인택시들은 특히 경쟁이 심하다. “하루 종일 길에 있다보니 사고 현장도 자주 봐요. 서로 경쟁하다가, 욕심내다가 사고 날 뻔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매일의 여행자들의 고단한 여행

“여러 해 동안 상을 받아도 될 만큼 택시를 많이 이용했다”는 이집트 소설가 할레드 알하미시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쓴 소설 를 보면 카이로도 한때 택시 수가 8만 대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그곳 사정도 우리와 비슷한지 한 소설 속 젊은 기사는 이런 말을 했다. “아, 정말이지 전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어요. 아니, 죽은 사람이 저보다 훨씬 낫죠. 저는 2교대로 일하는데도 한 달 후면 빚이 100파운드가 생겨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소가 우리보다 1천 배는 나을 겁니다.” 멀리 타국의 소설 대목을 더 빌려오지 않아도 이런 이야기는 넘실대고 있었다. 서울의 좁은 골목에서, 강을 이은 다리 사이를 넘나들며. 이 도시를 누구보다 속속들이 아는 매일의 여행자들은 그렇게 자신의 고단한 여행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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