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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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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에서 발견한 인간의 조건

등록 2013-04-26 20:53 수정 2020-05-03 04:27
다른 인간들과 관계맺음

“아이고 속 탄다.” 이 정규 편성되면서 나는 답답증에 걸렸다. 일단 파일럿 때의 긴장감이 둔해졌다. ‘휴대전화 없이 살기’ 미션에선 마치 내 손발을 잘라내는 듯한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자동차 없이 살기’라니. 그건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일상생활과 다름없지 않나? 연예인이 지하철 타고 낯설어하는 모습은 볼 만큼 봤다.

사실 내 답답증의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그들이 새로 들어와 살게 된 곳이 바로 우리 동네였던 것이다. 매일같이 돌아다니는 길이니 그들의 동선이 한눈에 파악되는데, 이게 좀 말이 안 되었다. 일단 하림각 건너편에서 버스를 내려 고갯길을 올라가는데, 그 동네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짓이다. 지도상의 수평거리는 그게 가까울지 모르지만, 그 길이 죽음의 경사도를 자랑한다. 터널 위까지 버스를 타고 올라가서 걸어가는 게 훨씬 편하다. 김준호가 왕발통을 타고 움직이는 동선이 바로 그 길이다.

물론 낯선 동네에서 겪게 되는 실수일 수도 있다. 하나 정태호의 말을 곱씹어보자. “인간의 조건은 그거 같아. 사람들이랑 친해지는 것.” 그들은 ‘돈 없이 살아가기’ 등의 미션을 수행하면서, 동료들과 더 자주 대화하고 도움을 주고받아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런데 왜! 동네 사람들을 찾아가지 않는가? 허경환이 눈이 빠져라 찾는 단기 알바, 그 동네 카페와 닭집부터 찾아가 물어보라고. 진정한 인간의 조건은 동네 커뮤니티다.

이명석 TV평론가
KBS 제공

KBS 제공

돈이 없으면 친구라도

‘휴대전화와 인터넷 없이 살기’라는 첫 미션처럼 신선한 충격을 던지기란 역시 어려운 모양이다. 텀블러 사용이나 일회용품 줄이기 같은 작은 실천이 모여 재미와 의미를 만들어내던 ‘쓰레기 없이 살기’에 비해 ‘차 없이 살기’는 바쁜 직업인이 서울에서 자가용 없이 사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지를 확인시킨 데 그쳤기 때문이다. 결핍이 미션의 바탕이 되는 만큼 다소 무리수로 제시된 듯한 ‘돈 없이 살기’에는 과거 MBC 을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와 짧은 육체노동 체험이 이어지지만, 초반 의도와는 달리 문명의 이기에 대한 발상의 전환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대 가치에 가까운 돈 없이 살아남는 것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움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의 여전한 재미는 생존을 넘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으로 다른 인간들과 관계맺음을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기름값까지 직접 벌어 써야 하는 상황에서 허경환이 부산에 다녀올 일을 걱정하자 단번에 “보내줄게, 걱정하지 마”라며 다독이는 정태호를 보며 문득 찡해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동료들의 차를 청소해주고, 세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거리에서 헌 옷을 팔아 번 돈을 부쳐주는 멤버들이라니. 역시 사람은 돈이 없으면 친구라도 있어야 하나보다.

최지은 무소속 마감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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