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이기는 걸 보고 싶다
라는 책이 한창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을 때, TV 책 토론 프로그램에 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말했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정의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것 같다고. 중요한 예를 하나 들었다. 헌법소원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헌법은 우리 사회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중요한 텍스트다. 그런데 며칠 전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듣고, 맥이 풀려 꼼짝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얼 믿어야 한단 말인가?
현실이 정의로부터 멀어질 때, 드라마는 더욱 열렬히 그걸 갈구하지 않을까? 표면적으로는 그런 징후가 보인다. 과 는 모든 범죄자를 단죄할 수 있는 검찰을, (사진)는 모든 악의 배후를 폭로할 수 있는 언론을 다룬다. 과연 현실의 불의를 TV 속에서나마 뒤엎어보리라는 기대는 어느 정도 충족될까? 일단 나의 눈은 로 향한다. 무엇보다 송지나라는 이름 때문이다.
“세상에는 없어져야 할 사람들이 있어요. …제가 그중에 몇 놈 데리고 갈게요.” 여당의 실세에게 성상납 피해를 당한 삼류 연예인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그러나 그 앞에 있는 것은 ‘기레기’ 소리에 치여 사는 인터넷 연예신문 기자.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무기력은 단지 권력의 그림자가 너무나 짙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에 저항하는 목소리가 촌스러워진 시대이기 때문이다. 세대가 낳은 아이들이 청춘이 된 시대. 이제 현실 대 현실의 싸움은 어려워졌나보다. 그래서 ‘힐러’라는 슈퍼히어로가 등장한다. 비록 판타지로서의 저항이지만, 정의가 이기는 모습을 보고는 싶다.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
드라마, 언론의 윤리를 묻다
2014년에는 유독 부조리한 권력을 정조준한 사회극 성격의 드라마가 많았다. 영화 (2011)와 (2012) 이후 뜨겁게 달아오른 ‘무비 저널리즘’ 열풍이 안방극장까지 확대된 인상이다. 무비 저널리즘 열풍이나 TV 사회극 증가의 공통적 배경에는 권력 비판 기능을 상실한 언론의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증명하듯이 총체적 부실과 부패 상태인 한국 사회에서 현재 가장 문제적인 집단은 단연 언론이다. 대부분의 언론과 언론 종사자는 이른바 ‘찌라시’ ‘기레기’와 같은 말이 됐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의 TV 사회극 가운데 제일 눈에 띄는 것은 언론권력을 정면으로 비판한 작품들이다. 특히 KBS 월화드라마 는 1980년 언론통폐합 사건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며 보도 저널리즘 후퇴의 근원적 배경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전의 언론 소재 드라마가 언론인들의 성장을 중심으로 한 전문직 드라마 안에 머물렀을 때, 언론의 윤리에 대해 정면으로 질문하는 의 문제의식에는 진일보한 면이 있다.
가령 첫 회에서 삼한공업 대량해고 사태를 두고 한국 최고 언론권력을 대표하는 제일신문 회장 김문식(박상원)이 정권과 자본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밀실회의 장면은 언론의 현주소를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아무도 우리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서” 분신 항거를 택한 삼한공업 노동자의 피맺힌 외침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것도 그래서다. 는 그렇게 언론이 권력의 입 노릇을 하는 이 시대의 비극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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