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모델 지망생이 함께 하는 커플 미션이고, 가능한 경계를 넘어서는 특이한 과제라. 그래, 그게 좋겠다. “이민자들의 2세 커플로 변신하라.” 아프리카 출신이라며 얼굴 검게 칠하고 민스트럴 쇼를 하라는 게 아니다. 한국인의 유전자를 가지고 지구 곳곳의 문화와 자연에 녹아든 스타일을 연출하라. 가능한 한 낯선 풍광 속으로 들어가 역설적인 에스닉을 만들어내라.
거기에 역사적 맥락도 충분히 고려하면 좋겠다.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다가 흑해 석유개발로 세련되게 변모한 고려인, 애니깽 할머니 밑에서 자라났지만 쿠반 살사 챔피언이 된 아바나의 코레아노,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로 갔다가 정착한 한인 가계의 테크노 스타일 베를리너, 혹은 나이아가라 ‘폭포 횟집’의 증손자인데 인디언 패션을 즐긴다는 설정은 어떤가? 그 밖에 아르헨티아의 보카 항구, 파타고니아의 벌판, 케냐의 커피농장, 하와이의 해변에서 날아온 멋쟁이 한국인 2세들을 만나고 싶다.
분명히 개연성이 떨어지는 판타지인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같은 한인의 DNA로도 이렇게나 다양한 스타일로 변모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면 그것 역시 흥미롭지 않나? 거기에 각 지역의 아시아인들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색조 화장이라든지, 패션 스타일이라든지 이런 디테일을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루시 리우로 대표되는 미국의 아시아계 미녀들처럼 딱 그 문화에서 아시아인들에게 기대하는 미의식 같은 것들 말이다.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
가 혼성 구도를 도입하면서 지난 시즌과 가장 달라진 점은 미션 수행 과정에서 더 다양한 조합과 역동적인 스토리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여여, 남남, 남녀 등 여러 커플 구성으로 도전자들의 색다른 모습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고, 힘이 중요한 남성 모델들의 시원시원한 포즈를 보는 맛도 쏠쏠하다.
악녀 논란으로 점철된 이전 시즌들의 자극적 갈등 없이 미션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젠더리스’ 미션은 “성벽은 무너졌다”를 슬로건으로 내건 이번 시즌의 취지를 잘 드러낸 과제로 인상적이었다. 트랜스젠더 뮤지션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을 관람하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고백한 뒤, 성차를 지우는 화보 촬영으로 이어진 구성도 좋았다. 현실이나 대중문화 안에서 남녀가 같은 조건에서 동등한 존재로 경쟁하는 이야기를 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하면 이번 시즌은 유독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후의 톱2가 모두 동성이기보다 남녀 결승 구도가 되는 것을 보고 싶다. 혼성 대결이 될 경우, ‘젠더리스’ 미션 연장선에서 상대방을 마치 샴쌍둥이처럼 또 다른 자아로 표현하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상대방을 정확하게 관찰하고 그 장점을 자기 것으로 만든 뒤 다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해야 하기에 경쟁자와 자신을 다 잘 알아야 성공 가능한 미션이다. 그러한 이해의 미션 뒤에야 쇼가 끝난 후에도 남녀가 진정한 동료이자 경쟁자로 나란히 설 수 있지 않을까.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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