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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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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들의, 평론가들에 대한 당신을 위한 뒷담화

‘한국 영화 신 르네상스’ 시대 오히려 위축되는 영화평론

<7번방의 선물>, 박찬욱·홍상수, 다른 평론가를 3인의 평론가가 평하다
등록 2013-03-24 04:56 수정 2020-05-02 19:27
시작은 지난해 3월 개봉한 이었을 것이다. 2012년 관객 100만 명을 넘긴 영화가 31편. 을 포함해 1년 새 1천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가 3편이다. 그러나 ‘한국 영화의 신 르네상스 시대’라는 나팔소리와 영화잡지 의 폐간 소식이 동시에 찾아들었다. 관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평 론의 자리는 좁아지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용철·황진미·허지웅 3명의 영화평론가가 한국 영화 호황 시대에 오히려 위축되는 평론의 속내를 털어놓았 다. 그동안 지면에서 미처 말하지 못했던 솔직한 영화평도 함께 했다. _편집자
953호 레드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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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은 특히나 평단의 평가와 관객의 반응 사이 의 간극이 크게 느껴졌다. 최근 평단에서는 인정받지 못한 영화 가 흥행하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용철(이하 이) 평단의 점수와 관객 수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어폐가 있어요. 평단과 대중이 어긋난다고 해서 어 느 한쪽이 문제가 있는 건 아니죠. 저는 그보다 관객을 보는 시선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어요. 며칠 전 기사를 보니 어느 평론가가 “짜장면에 길들여진 관객에게 이젠 고급 음식을 먹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하더군요. 짜장면을 저급한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발상만큼이나 대중이 선택한 영화를 수준낮다고 생각하고 대중을 가르치려는 태도는 문제가 있어요. 울고 싶어서 1200만 명이 봤다는 멍청한 분석은 안 해야지요.

허지웅(이하 허) 저는 모두가 울고 싶어서 본 건 아니겠지 만 중요한 요소인 건 분명하다고 봐요. 그런 말이 딱히 비하 같지도 않고요. 이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는 아 무도 잘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그런데 관객 1200만 명이 봤다면 영화의 힘만이 아니라 외적인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뜻인데 그중 하나가 눈물의 힘이라는 거죠. 그 렇다고 누군가의 말처럼 “야권 패배 뒤 울고 싶은 사람들 의 마음을 건드린 덕분”이라는 건 정말 아니고요.

황진미(이하 황) 지난해 사법 비리를 고발하는 영화가 쏟 아져나왔죠. 도 있고 도 있고. 공 분은 해소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영화관에 가서 굳이 불편한 진실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아요. 만 해 도 그런 영화를 견딜 수 있을까 결심을 하고 가야 했죠. 그런데 이 영화는 캐릭터 코미디인 것처럼 홍보했지만 가 서 보니 눈물, 사회비판적 코드가 있고 게다가 해법으로 상생을 내놓았죠.

그 영화에서 기분 나빴던 것은, 예를 들면 경찰청 장이 몹시 비현실적인 캐릭터잖아요. 특정한 정서를 대 변하고 감정을 고양시키기 위해 그런 캐릭터를 이용하는 게 영화 전반의 정서예요. 게다가 기존 신파 영화들의 나쁜 관습에 기대고 있는 편이죠. 언제까지 지적장애인 은 무조건 레인맨이거나 착한 사람이어야 하나요. 그러 나 류승룡씨 덕분에 덜 불편하게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해 요. 또 기획력이 좋은 영화임에는 틀림없어요. 그게 제작 사의 힘인 것 같아요. 만약 이 감독의 전 작에 비해 잘 짜여 있다면 제작사 NEW와의 시너지에서 나온 게 아닌가 합니다.

저는 에서 감독 이름이 지워지는 현상이 아주 좋다고 생각해요.

‘7번방의 선물‘ 자파리필름 제공, ‘라스트 스탠드‘ CJ E&M 제공,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전원사 제공

‘7번방의 선물‘ 자파리필름 제공, ‘라스트 스탠드‘ CJ E&M 제공,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전원사 제공

“홍상수 영화 평론을 잘 안 읽어요”

최근 들어 화제는 한국 영화 대표 감독들의 귀환이다. 대부분 의 작품이 공개됐는데 솔직한 평을 듣고 싶다.

정말 싫으셨어요? 저는 비평가는 절대 윤 리적 근거에 비춰 영화를 평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 다. 실제 옆집에 그 여자가 이사 오면 싫겠죠.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면 윤리적으로 나쁘겠죠. 그러나 어차피 이게 영화고 상상력의 산물인 건데 윤리적 잣대를 동원 하고 싶지는 않아요.

박찬욱 정도의 감독이라면 윤리가 아니라도 태도는 중요하죠. 와 에 똑같은 장면이 있는 거 아시죠? 하얀 꽃에 피가 튀는 장면요. 쿠엔틴 타란티노와 박찬욱은 실제론 동년배지만 두 장면을 비교해봤을 때 박찬욱은 아직 청년이에요. 는 분노할 이유가 있고 그 분노를 피로 표현하죠. 박찬욱에게 피는 그냥 스타일이에요. 히치콕 감독의 와 똑같은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히치콕은 관객의 마음과 합의를 해요. 칼이 파고들지 않아도 공포를 심어주죠. 그런데 이 영화는 그대로 베끼면서도 감정적으로 몰입이 안 돼요. 혼자만의 문제라면 그러려니 했겠는데 아빠 허리띠에 엄마 블라우스, 삼촌이 선물한 신발을 신고 살인을 저지르는 모습은 미국 부르주아 집안의 일탈로밖에 안 보여요. 그 태도가 절박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문제예요. 그 태도가 절박하지 않다는 게 가장 문제예요. 는 어떤 절박함도 없이 그냥 살인을 저질러요. 박찬욱은 그전 영화에서도 계속 그런 스타일의 인물에 대해 낄낄거리며 즐기고 있었어요. 하지만 보는 나는 전혀 즐겁지 않아요. 박찬욱이 오래전 쓴 책 를 가끔 보는데, 책에 걸작들을 비판한 대목이 있어요. 그런데 그 문구들이 모두 제가 박찬욱 영화에 하고 싶은 말이에요. “과대평가…” “공허하다”. 박찬욱이 스스로 자신의 영화에 대한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 같아요. 너무 정확해서 무서웠어요. 이 영화 정말 매혹적이죠. 잘 만든 것 인정해요. 그러나 성장담으로서는 부정적이에요.

김지운은 할리우드에 납품하는 영화를 잘 만들어주더라, 박찬욱은 자기 색깔을 냈다, 이게 왜 칭찬이 되나요? 전 두 영화를 보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 한국 영화 시장이 잘돼야겠다는 거였어요. 한국 사회를 반영하는 영화가 있고 관객이 있고 담론의 시스템이 있어야 그 안에서 도 나오고 도 나오는 거잖아요. 할리우드식 표준화나 글로벌이란 이름으로 물적 과잉이 될 때 잃어버리게 될 것이 무엇인지 몹시 와닿았어요. 김지운 영화를 보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할리우드 B급 영화라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잘 나온 거죠.

이용철 평론가가 말했듯 누구의 영화는 좋은 영화고 누구는 저급하다는 식으로 영화에 급수를 매기는 태도는 이상해요. 평소 잘 만드는 감독, 못 만드는 감독이라 해도 영화는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전 이해할 수 없었던 게 홍상수 감독 영화는 나오자마자 영화잡지에서 대대적으로 다뤄요. 솔직히 저는 그 글들을 안 읽어요. 일단 잘 안 읽혀요. 인터뷰도 그렇죠. 감독은 굉장히 짧게 ‘우연이다’ 이야기하는데 평론가가 더 많은 살을 붙여요.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기이함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홍상수의 영화는 다양성 측면에서도 중요하고 자기 세계도 확실하고 윤리적 측면도 있어요.

평단의 과한 반응이 싫다는 거죠.

영화만 나오면 간증이 시작돼요.

홍상수도 싫을 것 같아. 오컬트주의지.

전 워낙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지만 개별 영화에 대한 리뷰를 쓰지 말고 단계를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터 그런 조짐이 있는데 시리즈가 완성되면 그건 다른 분석이 될 테니까요. 그런데 토씨까지 따지는 깨알 같은 비평은 대체 영화 분석인가요, 수사학인가요.

금석문학이죠.

어떤 리뷰는 한 단락 안에 내가 태어나 처음 보는 단어가 15개 나왔어요. 대체 이걸 누구를 위해 쓴 걸까요.

갇힌 단어들로 대중 영화를 말하지는 말아야 해요. 영화 비평은 일상언어로 대체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 어요.

연말에 기자와 평론가들이 뽑는 ‘올해의 감독’을 보 면 한국에는 홍상수·김기덕·박찬욱·이창동밖에 없는 것 같아요. 매년 신기한 감독이 많이 나오지만 발견하려 하지 않아요.

멀티플렉스가 ‘잡아먹은’ 평론

가 폐간되면서 영화잡지는 하나만 남았 다. 2억 명 관객을 넘어선 시대에 추락하는 매체와 평론의 위 상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사람들은 평론가 집단에 가지는 인상이 있어요. 논쟁 때 많이 나온 말이 ‘대중의 기호와 너무 다 르다, 현학적이다’였죠. 요즘에는 반대로 평론을 잘 써주 고 영화사에서 뒷돈을 챙긴다고들 하는데 평론가에 대 한 혐오가 만들어낸 소설이죠. 사실 대부분의 관객은 평 론을 안 봐요. 읽지 않는 평론을 두고, 허상에 돌팔매를 던지는 셈이에요.

허수아비 때리기죠.

앞선 한국 영화의 전성기로 과 가 나왔던 2006년을 이야기하는데 그 시기를 경계로 대중 도 변했어요. 이전에는 영화에 대한 토론이 있었 죠. 이후 사실 평론의 존재감은 제로예요. 지 금 관객 1천만 명이면 인구의 5분의 1인데 인터넷을 보면 을 둘러싼 담론이 아 예 없어요.

비평이 관심을 못 받는 이유는 매체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2002년부터 영화 마케팅 비 용이 크게 늘었지만 대부분 포털 사이트나 TV로 갔죠. 영화평론이라고는 별점과 20자평만 남는 거죠. 옥션 후 기랑 똑같아요.

비평의 실종은 멀티플렉스 체제와 관련이 깊다고 봐 요. 모든 영화가 일주일 안에 승부가 나야 하잖아요. 물 량 공세를 퍼부어서 얼마나 눈에 띄느냐, 이런 것이 중요 하지요. 작품성을 인정받아 두고두고 관객을 끄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동감입니다. 두고두고 영화를 볼 수 있다면 한 줄 평이 후기가 되고 담론이 될 텐데요.

평론가가 어떤 영화를 쓰고 싶다고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특히 어떤 영화가 싫거나 더럽게 못 만들었다 면 아예 언급을 안 하니까 비판은 사라져버렸어요. 결국 은 상찬만 남아요.

요즘은 좋다는 표현을 트위터로 하잖아요. 영화 기 자들 트윗만 보면 매일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걸작이 탄생하는 것 같아요. 어처구니없는 일이죠.

비율로 볼 때 더 많이 남는 것은 비판적인 비평이라 고 생각하는데 호평만 남기 쉬운 구조죠.

못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평론가도 힘들고 매 체도 싫어하고….

“지금은 단체협약서 관철할 시기”

한국 영화가 예기치 못한 호황을 지나 어디로 갈지 모두가 궁금 하다.

저는 이런 의문이 생겨요. 이 2006년에 나온 에 비해 질적으로 향상된 것이냐.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감독이 훨씬 힘이 셌고 거기서 만들어지는 여지들이 있었어요. 감독의 비전으로 발생하는 흥미로운 영화들이 나왔죠. 신정원 감독의 영화 와 같은 최근 영화를 비교해보면 감독의 상상력이 드러나는 느 낌과 갇혀버린 느낌이라는 차이가 드러나요. 그런 면에 서 중소 제작사인 NEW를 주목할 만한데 먼저 을, 다음으로 를 내놨어요. 굉장히 영 리하죠.

문제는 이 호황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예요. 대형 제 작사발 기획 영화로 끝까지 밀고 간다면 그건 반댑니다. 제가 이 현상을 지지하는 유일한 이유는 산업적으로 굳 건하게 형성될 규모나 내실을 취하자는 뜻이지요. 그러 다보면 곁다리로 뭔가 더 형성될 수도 있다는 기대고요.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표준 근로계약서나 단체협약서를 관철해야 할 시기 입니다. 그 주체도 지금까지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냐 어 디냐 했는데 투자배급사와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영화 스태프들의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게 중 요하죠.

정리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 영화평론가 이용철·황진미·허지웅 좌담회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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