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송호균 기자
만만하게 생각했다. 아내가 메뉴를 정하면,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든다. 사진을 찍고, 맛나게 먹은 뒤 칼럼을 쓴다. 매우 단순한 프로세스가 아닌가? 두 단계로 정리하면 ‘그녀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른다 → 나는 요리를 한다(cook)’ 정도가 되겠다. 오케이, 뭘 먹고 싶니? “비프 스트로가노프!” 아내가 외쳤다. 그랬구나. 너는 아는 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참 많겠구나.
인터넷을 뒤져봤다. 러시아의 대표 음식 중 하나로 버섯과 채소를 버터와 함께 볶은 뒤 양념해 익힌 쇠고기, 사워크림 등을 넣고 스튜처럼 끓여 밥이나 파스타에 얹어 먹는다. 옆구리에 살이 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기원은 불분명해 보인다. 러시아의 거상 집안이던 스트로가노프가에서 16세기부터 유래한 음식이라는 설도 있고, 19세기 러시아 외교관인 스트로가노프 백작(아마도 같은 집안이겠지)이 연회 도중 음식이 떨어지자 남은 재료를 박박 긁어모아 끓였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다는 버전도 있었다. 레시피도 제각각이었다. 어쨌든 요리에 사람 이름을 붙였다는 게 신기했다. 칼국수를 좋아했던 한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아줌마, 여기 바지락 YS 2인분요!”. 좀 이상하지 않은가.
룰루랄라, 동네 슈퍼에 장을 보러 갔다. 마침 한우 등심 세일 중이었다. 조금 더 두툼하면 좋겠지만 그냥 샀다. 느타리버섯과 양송이버 섯, 피망과 파프리카, 피클 한 통, 생전 먹을 일이 없던 버터도 한 덩이 챙겼다. 아뿔싸, 사워크림이 없다. 대형마트에 가야 하나. 사워크림 대신 요구르트를 넣어도 된다는 레시피가 떠올랐다. 그래, 그렇게 달진 않을 거야. 칼로리도 줄이고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플레인’이 라고 쓰인 요구르트를 샀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비극은 그렇게 시작됐다.
버섯과 채소, 슬라이스한 피클 등을 버터에 볶았다. 화분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민트와 타임을 땄다. 타임을 넣고 지은 밥 내음이 상큼했다. 밑간한 등심을 살짝 구운 뒤 재료들을 한데 모아 끓였다. 어린잎 채소와 민트도 넣어줬다. 크림을 빼기로 했으니 우유를 조금 부었다. 요구르트를 넣을 차례였다. 습관처럼 뚜껑에 묻은 요구르트를 핥았다. 어라? 달달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설탕 범벅이었다. 어쩐다. 한 통을 넣었다. 달아졌다. 한 통을 더 넣었다. 더 달아졌다. 끈적끈적한 질감의 스트로가노프가 되려면 두 통은 더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걸 다 넣으면 달아서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에라 모르겠다. 스트로가노프도 아닌, 그렇다고 쇠고기덮밥도 아닌 그 무엇을 접시에 담아냈다. 기대와 허기에 한껏 부풀어 있던 아내는 한입 맛본 뒤 낮은 목소리로 뇌까렸다. “여보, 김치 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나는 김치를 갖다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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