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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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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명사, 보통사람

등록 2012-11-16 21:02 수정 2020-05-03 04:27

수능 치던 날 한파는 오지 않았다. 다만 하루 내내 어두침침했을 뿐. 친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수능을 격려하는 글들이 타임라인을 도배하는 오늘, 누군가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날일 수도 있는. 그런 우중충한 날”이라고 적었다. 아니나 다를까 ‘삼수생 수능 전날 투신 자살’ 어김없는 비보. ‘파주 아파트 화재… 남매의 누나 끝내 숨져.’ 부모가 일하러 나간 사이 화재를 피할 수 없었던 장애인 남매의 소식을 읽는다. 아마도 최악의 통계를 기록하려고 가입한 것이 분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올해로 8년째 자살률 1위, 10만 명당 33.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라. 통계 바깥으로 빨간 펜을 들고 삼수생의 얼굴과 경기도 파주 어린 남매의 얼굴을 그려봤다. 알 리 없는 얼굴들. 지난해 1월 우울증으로 기숙사에서 자살한 삼성전자 노동자의 영정 사진과 경기도 화성 팔탄공단 폭파사고로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의 영정 사진이 떠올랐다. 리무진에 실린 관이 떠날 때 꽃이 되지 못한 보통명사들이 사라졌음을, 꺼이꺼이 어깨 들썩이며 울면서 알았다.
신문을 뒷장부터 읽는다

일러스트레이션 / 장광석

일러스트레이션 / 장광석

언제부터인가 신문을 맨 뒷장부터 읽기 시작했다. 알아야 할 것들은, 결론부터 빨리 읽고, 늦기 전에 달려가야 할 곳은 모두 뒤에 있는 것 같았다. 신문 헤드라인에 박힌 얼굴보다 보이지 않는 얼굴부터 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요즘 같은 때면 더욱 박이며, 문이고, 안이라는 성을 가진 고유명사들이 첫 장을 장식한다. 알고자 하지 않아도 TV, 포털, 신문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얼굴들. 누구를 뽑으실래요? 카카오톡으로 당신에게 ‘×××’를 추천합니다. 당신에게 홍길동, 당신에게 장동건, 당신에게 고현정. 아, 이 사람들은 후보가 아니라고? 어쨌든.

그러니까 이 세상은 고유명사가 주인공인 세상이다. 이름을 가진 사람들. 익명이 아닌 사람들. 그러나 주공아파트 107동 609호에 사는 나는 610호 아줌마 이름을 모른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인사를 나누는 경비 아저씨 이름도 모르고, 슈퍼집 강아지 레종의 이름은 알아도 그 집 딸내미 이름은 모른다. 그런데 익명의 사람이 고유명사로 등장할 때는 극적이다. 23명에서 죽음의 숫자를 멈추려고 30일 넘게 단식 중인 쌍용자동차 해고자 김정우. 구럼비 바위에서 자라난 제주도 강정마을 이장 아저씨 강동균. 송전탑 반대를 외치며 경남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 입구 다리에서 분신한 74살의 어르신 이치우. 검색어의 수위를 차지하는 사람들 틈에서 죽거나 다치거나 쫓겨나야만 잠깐 리무진을 타고 등장하는 보통스러워도 너무 보통스러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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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명사 대동단결

권력이 여기서 저기로 이사 간다고, 세상이 갑자기 좋아질 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 이름들에 환호한다. 구질구질한 세상을 바꿔줄 누군가를 기다린다. 드라마의 제목이 야권 연대이건, 노동자 정치세력화이건 욕망은 같아 보인다. 도박사에게 판돈을 모두 건 듯이. 알고 보면 자기 인생에서는 모두 고유명사로 살아가고 또한 죽어가면서. 이건 사는 게 아니야, 라고 질러야 할 비명조차 일단 통장에 넣어두고. “나 이 사람, 노태우 보통 사람입니다”라는 희한한 인물이 보통명사조차 고유명사로 뺏어갔던 과거가 기억난다. 그러니까 더욱 보통명사들은 대동단결해 고유명사들을 길들여야 하지 않을까. 승부는 짧고 인생은 길기 때문이다. 정치가 빠름빠름빠름 하더라도… 청와대 옆 대나무숲에서 외쳐보자. “문제는 권력이 아니라 권리야~. 스투피드~.”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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