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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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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고 ‘프리’한 유부남들의 귀환

<그 여자랑 살래요>로 돌아온 음원과 예능의 콜라보레이션 듀오 UV… 매체를 갖고 놀 줄 아는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 유세윤의 매력
등록 2012-09-21 15:49 수정 2020-05-03 04:26
코엔 제공

코엔 제공

처음 이 회사에 들어와 일하며 나에겐 세 가지 소원이 있었다. 첫째는 거성 박명수의 흑채를 진짜 홈쇼핑에서 팔아보는 것. 둘째, 사업가이자 패션계의 이단아 노홍철의 신기한 ‘아템’들과 독특한 ‘빠숑’ 세계를 방송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일단 무조건 UV를 방송에 출연시키는 것. 사실 내 돈 내고 다니는 회사도 아닌데 기왕지사 회사 돈으로 좀더 뭐 재미난 일 좀 할 수는 없을까 싶었다. 모두가 코웃음친 꿈이었지만, 운 좋게도 2010년, 내 나이 스물아홉 되던 해에 세 가지 소원이 거짓말처럼 전부 술술 이루어졌다. 나는 지금 여한 없이 잉여롭게, 그리고 조금은 시시하게 월급쟁이 생활을 연명하고 있다. 유난히 부담 없다는 유부남 둘(UV)의 신보 가 발표된 시점에서 유세윤을 추억한다.

<font color="#A341B1">2집 첫 활동으로 홈쇼핑 출연한 UV</font>

지금이야 정형돈의 도니 돈가스와 정준하의 스테이크 등 MBC 멤버 절반이 홈쇼핑에 나오고, 전설의 기타리스트 김도균이 통기타를 소개하는 시절에 살고 있지만, 2년 전 이른바 한물간 스타가 아닌 현재 활동하는 연예인들의 홈쇼핑 출연은 터부시돼왔다. 쾌남 UV는 2집 의 첫 공식 활동으로 이 아닌, 도 아닌, 유튜브도 아닌 홈쇼핑을 택했다. 사실 공중파 사이에 위치한 홈쇼핑 채널은 알고 보면 시청자에겐 웬만한 케이블, 종편 채널보다 더 눈에 띄는 채널이다. 그 파급력 또한 크고 즉각적이다. 이 목 좋은 노른자위 전국구인 홈쇼핑 생방송에 유세윤이 나와서 자신들의 음반을 판매한다는 설정이었다. UV의 발칙하고도 당당한 행보로 홈쇼핑은 하루아침에 B급 채널 영역에서 그야말로 잘나가고 핫하다는 인증 코스가 되었다. 방송 환경은 눈 깜짝할 새 급하게 변한다. 장기적인 음반시장의 불황에 ‘앨범 판매’라는 직접적 판매 방법까지 도모했다는 점에서 홈쇼핑은 아주 적확한 컴백 활로였을 테다. 이 영악하고 발칙한 선택을 해준 유세윤이 너무 예뻐 나는 당시 예정에 없었지만 광팬을 자처하며 스튜디오에 난입하는 괴여인으로 출연했다. 내게는 그게 UV를 기념하는 세리머니였다.

쿨하지 못해 미안하단 너스레를 떨며 혜성같이 나타난 그들의 역설적인 쿨한 작태. 모두가 쿨함을 강요받는 이 시대에 과감하게 ‘그래, 나 찌질하다’는 걸 인정하는 그것이야말로 궁극의 쿨함이었다. 음원 자체의 고퀄리티 여부를 떠나 심혈을 기울인 뮤직비디오는 묘하게 기존 뮤비 장르를 모방하는 동시에 비꼬았고 이것이 개그인지 뮤비인지 노래인지 모두인지 알 수 없는 와중에, 밑도 끝도 없이 신났다. 따지고 보면 장르 파괴는 사실 유세윤이란 엔터테이너를 있게 한 의 닥터피시 때부터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 맞다. “너와 키스한 순간 나는 알았어, 너는 멘솔을 피운다는 걸, 이 사람아.” 세계 한마음 콘서트에서는 “피부색은 다르지만, 언어는 다르지만… 욕은 다 알아들어, 이 사람아”라고 노래했다. 도박 근절 콘서트에서는 “이제 와서 고백해서 미안해, 너 아까 흔들었어, 이 사람아”라며 나타났다. “이렇게 떠나게 돼 미안해, 아이디어 다 떨어졌어, 이 사람아”를 끝으로 굿바이 콘서트. 상황극의 탈을 썼지만 실제 뮤지션인 듯한 착각과 함께 노래 제목만으로도 관객과 소통했다. 결국 롤플레잉, 가수 역할극 코스프레를 통해 그는 이미 UV의 전신을 다듬고 있었지 싶다.

UV의 2집는 룰라, 듀스 등을 묘하게 연상시키는 1990년대의 오마주였다. 복학생 캐릭터로 대중의 눈에 들어왔던 만큼 그는 과거로의 시간여행 1등 승무원. 영화 과 의 청춘나이트, tvN 에서 1990년대 추억담이 나타나기도 전에 90년대를 가장 먼저 소환해낸 장본인이다. 에 이은 공전의 히트곡 이 낳은 로컬리즘은 또 어떠한가. 로 이어지는 로컬송은 그 지역에 대한 공감과 애정이다. 는 윤종신의 와 , 버스커버스커의 를 위시한 푸드송 시리즈에 이어 소재 고갈로 시달리는 대중음악계에 던져진 떡밥이었다.

다른 장르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모든 채널의 예능화를 주도한 UV는 홈쇼핑, 고교 방송, 게릴라 무대 등 아이디어가 생기는 곳이라면 어디든 뛰어들어 화제를 낳았다. 사진은 홈쇼핑에서 음반 판매쇼를 벌인 UV. 공세현 PD 제공

다른 장르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모든 채널의 예능화를 주도한 UV는 홈쇼핑, 고교 방송, 게릴라 무대 등 아이디어가 생기는 곳이라면 어디든 뛰어들어 화제를 낳았다. 사진은 홈쇼핑에서 음반 판매쇼를 벌인 UV. 공세현 PD 제공

<font color="#A341B1">늘 궤와 계를 달리하는 ‘제3의 유’ </font>

음원과 예능의 콜라보레이션은 을 통해 눈에 띄었지만 사실 그 시작은 의 가수 커플 서인영과 크라운제이의 러브송부터다. 한 노래의 메이킹 과정이 공유되고 스토리텔링이 곡 자체보다 먼저 대중에게 파고들어 지지대를 형성한다. ‘뚱s’ ‘처진 달팽이’ ‘파리돼지앵’ 등으로 파생되기도 한다. 다마고치처럼 수용자가 함께 키우는 콘텐츠의 전형이다. 나 ,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에 쓰인 곡들의 재발견 역시 스토리에 열광하는 대중의 심리에 호소한 것 아닐까. 이후 ‘형돈이와 대준이’ ‘하하와 스컬’ ‘용감한 녀석들’의 등장 저변에 UV란 성공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더불어 이는 앨범을 소장하고 간직하던 음악 소비 형식이 플레이해보고 웃고 마는 소모적인 형태로 변한 현 매체 환경에 맞춘 진화다.

개코원숭이라는 극강의 코미디 원형, 킬러 콘텐츠를 지닌 유세윤을 세상은 ‘뼈그맨’이라 칭한다. 를 떠나 버라이어티에 안착해, 건방진 도사를 지나 케이블의 비틀스 코드로 종횡무진하더니 UV 결성으로 독자적인 행보를 꾀했는가 하면, 다시 정글로 돌아가 제패까지. 이쯤 되면 매체를 이리저리 휘어잡으며 갖고 놀 줄 아는 아티스트, 기획자의 면모를 갖춘 프로듀서라고 해도 되겠다. 현재 대한민국 방송가에서 자신만의 콘텐츠와 쇼를 가진 이를 꼽으라면 유희열, 최근에야 ‘19금’으로 재조명되는 신동엽과 컬투 정도가 있을 것이다. 유재석쇼가 가능할까? 언뜻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이유는, 유재석은 PD가 짜놓은 포맷에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는 사실 너무 쿨했다. 이 묘하게 강남스럽지 않은 촌스러움을 입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쿨했던 그는 어느 날은 예능 프로그램 를 통해 자기 안의 공허와 우울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항상 반전을 보여준다.

2012년 싸이가 글로벌 B급으로 나아갈 때 나온 UV의 신보는 외려 비교적 힘을 뺀 채 자유로워 보인다. 이번 그의 수술대에 오른 장르는 막장 드라마! 안 그래도 후속작인 에 요 며칠 심취해 있던 차에 말이다. 새 뮤직비디오 는 드라마타이즈로 제작된 만큼 한국 사회의 영원한 테마 고부갈등과 사랑을 담고 있다. 영어 자막을 쓴 건 미드 영향일까, 아니면 한류를 의식한 걸까? 뮤직비디오 감독은 이사강이 맡았다. 에서 박진영이 그랬듯, 이번엔 가수 윤도현이 막장 드라마에 뛰어들었고, 그 속에서 매우 즐거워 보인다. 김진수와 이윤석이 허리케인으로 활동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가발을 뒤집어쓰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에서 김종서 피처링을 방불케 하는 샤우팅까지. 윤도현도 ‘UV 월드’에 뛰어들었을 때는 그냥 진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놀다 가는 듯하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려 하지도 않고, 무얼 이루려 하지도 않는다. 생업을 대하는 절실함이나 비장함 대신 ‘아님 말고’ 식의 근원적 자신감을 탑재했다.

가수 이적은 유재석이 ‘낮의 유’라면 ‘밤의 유’는 유희열이라 말했다. 그렇다면 유세윤은? 늘 궤와 계를 달리하는 ‘제3의 유’다. 그러고 보니 ‘쓰리유’. UV는 10월에 생애 첫 단독 콘서트 ‘빽투더미쳐’를 앞두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해라. 내가 미쳐 있는 것으로 돌아가라.’ 박진영 같은 고수는 대중의 코드를 읽는다. 먹힐 것을 만든다. 은 그런 시각으로 탄생했지 싶다. 고수가 되려는 욕망을 초월한 사람은 자유롭다. 대중이 내게 원하는 것을 파악하겠다는 생각 말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겠다는 마음 말고, 그냥 본능이 이끄는 대로 하게 된다. 연예인으로, 아티스트로 살아가려면 그게 정공법이고 답이다. 누굴 의식하지 않고, 엄청 잘해야겠다 꼼수 쓰지 않고.

유행을 앞서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UV가 새로운 뮤직비디오를 냈다. 이번에 그들이 꽂힌 콘셉트는 막장드라마다. 왼쪽부터 가수 뮤지와 개그맨 유세윤. 코엔 제공

유행을 앞서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UV가 새로운 뮤직비디오를 냈다. 이번에 그들이 꽂힌 콘셉트는 막장드라마다. 왼쪽부터 가수 뮤지와 개그맨 유세윤. 코엔 제공

<font color="#A341B1">닥치고 10월엔 ‘빽투더미쳐’로 가자 </font>

여러 차례 사람들을 웃기거나 놀라게 한 UV의 활동이 영리한 쇼비즈니스일까? UV의 팬으로서나 프로듀서로서나 아니라고 믿고 싶다. 프로 개그맨으로서 유세윤의 고전적인 야심작이 ‘옹달샘’이라면, ‘빽투더미쳐’는 그의 한강이었으면 한다. 영화배우 하정우가 말한 저마다의 한강 하나쯤은 갖고 있기를 우리 모두는 소망한다. 이들이 순수하게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마음껏 하고 있음에 지지를 보내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한강을 아직 찾지 못한 이들, 그들의 한강에 같이 뛰어들어 응원하고 싶은 사람, 아, 이 글을 쓰며 회사를 때려쳐야 할 때가 온 것 같단 생각이 드는 심각한 가을앓이 중인 홈쇼핑 PD까지, 닥치고 10월엔 ‘빽투더미쳐’로 가자.

공세현 CJ 오쇼핑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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