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이상하게도 ‘배 째라’며 배짱을 부리면 일이 잘되곤 했다. 학교 시험기간에 시험범위까지 다 공부하지도 못해놓고, 에라이 모르겠다 배 째라, 하고 잠을 자버리면 다음날 되레 시험을 잘봤다. 대학생이 됐다는 낭만에 젖어 술에 젖어 아버지가 정해놓은 통금 시간을 넘겨 집에 들어갈 때, 혼나도 어쩔 수 없지, 체념하고 들어가면 아싸! 컴컴한 집 안에는 부모님의 낮게 코 고는 소리만 울려퍼졌다. 오히려 전전긍긍 노심초사한 날은 꼭 시험도 망치고 아버지도 거실 소파에 앉아 현관문을 노려보고 계셨다.
아기 낳는 일을 어디 중간고사 한국사 시험이나 술 취해 늦게 귀가하는 일 따위에 비하겠느냐마는, 이번에도 느낌이 딱 그랬다. 갑자기 아기를 갖고, 뱃속의 아기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했을 때, 사람은 다 자기 먹을 밥 숟가락은 물고 태어난다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비위가 상해 어린 조카 똥 한 번 못 치워주고 길거리에서 떼쓰는 아이를 보면 기겁하면서도 내 애는 어찌 키우겠지, 그랬단 말이다.
산후조리원에서 나와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온 첫날, 떨렸다. 이제 아기를 24시간 온전히 나와 남편이 돌봐야 할 터다. 특히 병원과 산후조리원에서 신생아실에 아기를 맡겨놓고 푹 자던 밤 시간이 걱정이었다. 그런데! 반전이었다. 밤 9시쯤 젖을 먹고 잠이 든 아기는 깨지 않았다. 지금이 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7시간을 내리 잤다.
우연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곤란이는 그렇게 밤잠을 잤다. 처음부터 7시간을 내리 자고 일어나 젖을 조금 먹고 2시간을 더 자는 패턴을 완벽하게 굳혔다. 한달 두달이 지나자 내리 자는 시간은 7시간에서 9시간까지 길어졌다. 밤잠을 자기 시작하는 시각은 저녁 8~9시였다. ‘육아 퇴근’이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퇴근 시간마저 거의 일정했다.
“네가 정녕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냐.” 밤잠 잘 자는 순둥이 곤란이를 보며 나와 함께 아기를 낳은 ‘F4’(지난호 참조)는 절규했다. 그런 그들에게 “아기가 일찍 자버리니 심심하다”는 말로 염장까지 지른 나는 나쁜 여자다.
‘곤란해도 괜찮다’고 했는데 엄마 처지에서 미안하리만치 순한 아기가 나왔다. 세상의 이치가 참으로 신기하다. 엄마가 잘 못 재워줄 것 같으니 아기가 알아서 잘 자기로 한 걸까. 이제는 되레 아기가 내게 말하는 것 같다. 엄마, 곤란해도 괜찮아.
아아, 이렇게 자식 자랑을 늘어놓는 것을 보니 나도 이제 팔불출 아들바보가 다 되었구나. 그나저나 이번 칼럼, 자랑만 한다고 사람들이 싫어하면 어찌하나. 에잇 모르겠다, 배 째세요. 임지선 한겨레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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