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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네 부부싸움

공개 반성문
등록 2012-07-11 16:58 수정 2020-05-03 04:26
아기를 목욕시킨 뒤 조심스레 누이는 남편. 한겨레 임지선 기자

아기를 목욕시킨 뒤 조심스레 누이는 남편. 한겨레 임지선 기자

“결혼해서 부부만 살 때는 다투고 갈등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자식을 낳겠다고 결정했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아이 키우는 엄마는 언제나 남편을 이해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이 낳고 3년은 무조건 엄마가 키워라’ 등의 발언으로 수많은 엄마들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 그만큼 널리 읽힌 육아서 에서 법륜 스님이 한 말이다. 지지든 볶든 아이 낳기 전에 하고 아이를 낳았으면 사랑으로 가정을 이끌란 말이다. 요즘 이 말에 크게 공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산후조리하는 아내를 두고 유럽 출장을 떠난 남편의 만행을 고발한 칼럼이 나간 뒤, 수많은 이들의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일부는 공감을 너무 격하게 한 나머지 남편을 심하게 욕하는 전자우편을 보내오기도 했다. “아내한테 잘 좀 하라”는 회사 동료의 말을 듣고서야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한 남편은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남편 완전 삐침.” 아아 난 그만 전국, 아니 전세계적으로 남편을 흉본 것 같아 끝내 미안해지고 말았다.

사실 유럽 출장 건을 빼면 남편은 여러모로 ‘좋은 아빠’다. 누구보다 ‘노 키드’로 자유롭게 살길 원한 남자인데도 임신 뒤 180도 변모한 모습을 보였다. 아기용품을 직접 구매하고, 칼퇴근을 해 집에 와서 아기 목욕을 시킨다. 아침에는 1시간 일찍 일어나 아기를 돌보다 아기 재롱에 취해 지각하기 일쑤다. 주말이면 평일 내내 집에만 있는 내가 답답해할까봐 아기를 데리고 집 앞 카페라도 나간다.

그럼에도 혼자 아기를 돌보느라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남편의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분노가 치미는 것도 사실이다. 에잇, 싸워버리자! 싸우고 나면? 자, 상황을 보자.

엄마가 소리를 지르고 아빠가 고함을 치니 아기가 놀라 운다. 아기에게 하늘이고 땅이고 공기고 우주인 엄마와 아빠가 싸운다는 건 세상이 두 쪽이 나는 큰일이다. 남편을 욕하며 아기를 껴안아 달래고는 젖을 물린다. 순간, 혹시 내 분노가 젖에 이상을 주지는 않았을까, 나쁜 기운이 아기 몸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진다. 잠든 아기가 자꾸만 놀라서 깨면, 아까 우리 싸울 때 놀라서 그런가 죄책감에 가슴을 친다. 화해를 하지 않고 남편이 출근해버리면 하루 종일 마음이 불지옥이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나서 산후우울증이 오나 걱정도 된다. 결국 내가 만든 감옥에 갇혀 바둥거리게 된다.

사실 그렇다. 결혼하고 나서는 싸울 때마다 ‘결혼만 안 했으면, 사귀는 사이였으면 당장 헤어졌을 텐데’ 한다. 아기를 낳고 나면 ‘아이고, 애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레퍼토리가 바뀐다.

계속 그렇게 살 텐가? 아니다, 법륜 스님처럼 수양을 해서라도 마음을 바꿔먹어야겠다. 따지고 보면, 남편 그가 누구인가? 그는 나와 함께 아기의 웃음, 아기의 아픔, 아기의 성장을 보고 듣고 기억하며 늙어갈 사람이다. 세상에서 나의 아기를 가장 사랑하는 남자이며, 그 아기를 사랑하는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남자다. 아기 없이 함께 살았던 지난 5년의 시간과 아기가 태어난 지금, 그와 나의 관계는 매우 다르다. 그 사실을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 순간, 남편 때문에 속병을 앓으며 마음 감옥에 갇혀 있는 분들이여, 보시라. 이렇게 대놓고 남편 뒷담화를 했다가 공개적으로 반성문을 쓰는 어리석은 여자도 있답니다. 나무아미타불….

임지선 한겨레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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