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훈 제공
청춘의 시기는 남달랐다. 26살의 여름. 남자는 모터사이클에 몸을 맡기고 도로를 질주했다. 인차일체. 자동차와 달리 조종사가 그대로 노출되는 모터사이클은 사람이 바로 차체 프레임의 한 축을 담당한다. 다리 사이로 느껴지는 병렬 4기통 엔진의 힘은 몸 안의 피가 역류할 정도로 쾌감을 선사했다. 그리고 대개 그러하듯, 생물학적 안정을 추구하기 시작하자 모터사이클과 멀어지게 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현실 속 전투를 거듭하며 모터사이클이 그리워졌다. 특히 헬멧의 보호유리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미술 교과서에서 얼핏 본 종교화 같은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그 풍경을 다시 끄집어내고 싶었다.
헬멧을 구하러 서울 퇴계로에 갔다. 그러나 남자는 절망했다. 머리에 맞는 헬멧이 없었다. 남자의 머리둘레는 65cm. 헬멧 사이즈로는 ‘스리 엑스라지’(3XL)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지하보도를 누비며 헬멧에 머리를 집어넣어 봤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어쩌다 들어가면 중세의 데드마스크를 쓴 듯 엄청난 고통이 뒤따랐다. 문득, 신데렐라 유리구두에 발을 집어넣던 여자들이 생각났다. 자기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억지로 발을 집어넣던 여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더 이상 그 여인들을 보며 웃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고급형 대형 모터사이클이 늘어나자 헬멧 제조업체들도 3XL 사이즈를 아예 생산하지 않기 시작했다. 100만원은 우습게 넘어가는 각종 신소재와 풍동실험과 컴퓨터 설계를 바탕으로 한 ‘프리미엄 제품’에 주력해 간단한 헬멧 제조를 줄였기 때문이다. 헬멧에 쓰이는 플라스틱 등의 소재로 만든 외피는 일반적으로 XL까지는 크기가 같지만, 2XL를 넘어서면 금형을 새로 파서 만들어야 한다. 이 때문에 헬멧업체들은 합리적인 결단을 내렸다. 이 정도의 비정상적인 머리 사이즈를 가진 사람은 극소수고, 그중에서 모터사이클을 타는 사람도 아주 적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생각 말이다.
다만 이 결정에서 극소수 가운데 극소수인 내 처지가 제외됐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었다. 머리에 맞는 헬멧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트위터에 글을 올렸는데, 이 딱한(?) 사연이 어느 마음씨 좋은 헬멧업체 관계자의 귀에 들어갔다. 그는 이 사실을 대만 공장에 알렸다. 헬멧 사이즈가 커지는 건 단순히 크기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충격 흡수와 공기역학적 특성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 보통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근성 있는 엔지니어들은 이 프로젝트에 동참을 선언했고, 약 한 달 뒤 그 결과물이 나왔다. 나는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다. 턱 부분이 위로 올라가는 최신형 시스템 헬멧을 쓴 채 눈물을 흘리며 키보드를 치고 있다. 이 헬멧은 나를 보호해줄 친구로 나와 꽤 오랫동안 함께할 것이다. 그 친구는 위기 때 자신의 몸을 쪼개며 나를 보호해줄 것이다. 나에게 크리스마스 디즈니 영화 같은 감동을 선사한 SOL코리아 이광훈 대표께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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