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는 자연 파괴의 역사일까. 인간은 영원히 변화하는 자연에서 에피소드에 불과할까. 아니면 이런 주장들. 우리는 지속 가능하게 자연 자원을 관리해 미래 세대에 넘겨줄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일까, 지속 가능이란 자연 착취를 정당화하는 다른 말일 뿐일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두고 상반된 의견들이 서로의 모순만 비난하며 공존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환경사 전문가인 요아힘 라트카우 교수(독일 빌레펠트대학·근대사)는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 환경사를 논의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이언스북스 펴냄)에서 인간 활동의 결과로 야기된 환경의 변화가 다시 어떻게 인류 역사에 방향을 제시해왔는지, 세계사의 맥락에서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다뤘다.
자연을 다스리면 권력을 얻는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아널드 토인비와 헤로도토스의 글을 읽으며 언젠가는 역사와 자연, 역사와 지리학을 연결지어 역사를 조망하리라는 꿈을 꿨다. 은 그 오랜 꿈의 결과일지 모른다. 저자가 밝히듯 환경사 연구란 지역사는 물론 고고학, 지리학, 민속학, 전염병학, 고생물학 등의 분야가 서로 연구의 단초가 돼주며 융합해 발생하는 지적 연쇄반응이다. 학문 사이의 경계를 별반 존중하지 않는다는 저자는 그래서, 책 안에서 방대하고도 촘촘한 정보 사이를 끝없이 유영한다.
책은 총 6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1장 ‘환경사의 사색’에서는 환경사를 대하는 저자의 관점을 밝혔다. 저자는 자연이 보여줄, 예기치 않은 일이 닥칠 것을 각오하고 현상의 흐름에 주의하고 이를 되도록 여러 면에서 고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2장부터는 대체로 역사의 시간과 같은 순서로 환경사를 논한다. 2장은 자급자족 경제의 시대를 다뤘다. 인간과 자연이 원초적으로 공존하던 시대, 소규모 공동체가 주역을 이루던 이 시절에는 인간의 경제활동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환경의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환경 피해가 일어나도 감당하기 쉬웠다. 그러나 저자는 이 시기에도 소규모 공동체로는 해결할 수 없는 환경문제가 있었다고 말한다. 예컨대 기근과 추위, 굶주림과 목마름, 홍수와 산불의 경험 같은 것, 혹은 종교적으로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환경사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었다.
3장에서는 유럽·이집트·메소포타미아·중국 등 다양한 지역 조건의 서로 다른 문명들이 물·숲·땅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그래서 환경과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물을 다스린다는 것은 곧 권력을 가진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저자는 치수(治水)를 위해 관개시설을 과다하게 이용할 경우 어떤 비극을 맞게 되었는지 제시한다. 메소포타미아의 경우 관개시설을 지나치게 이용해 토양이 염화하고, 곧 사막화를 거쳐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저하되는 등의 결과를 초래했다. 그는 과거의 사례를 들며, 오늘날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도 여전히 인공 관개의 대가로 동일한 문제를 앓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환경에 끼친 영향을 고찰한 4장의 내용도 흥미롭다. 제국주의 국가는 식민지의 생태적 기능을 유지하는 것에 무관심한 채 자원의 유출에만 몰입하는 정책을 폈다. 반대로 식민지 국가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한 환경보호 정책을 펼치다 애꿎은 결과를 맞은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19세기 말 식민 세력들은 짐바브웨 등 중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대형 야생동물 보호론을 펼치며 원주민들에게 대형 야생동물을 사냥하지 못하게 했다. 그 결과 대형 야생동물과 공존하는 체체파리가 증가했고, 인간과 가축이 수면병에 걸리는 등 최악의 재앙이 야기됐다.
5장과 6장은 더 가까운 역사를 이야기한다.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발달이 자원 고갈 문제를 불러왔다는 것은 명명백백 알려진 사실이다. 저자는 산업화 시대를 두고, 자연 자원을 남김없이,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때라고 설명한다. 감자와 옥수수의 전파는 폭발적 인구 증가에 기여했다. 인구 증가는 다시금 토양의 생산성에 부담을 가중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낳았다. 석탄 사용과 화학비료의 등장은 많은 인류를 구제했지만, 한편으로 인류는 대기·수질·토양 오염이라는 대가를 얻어야 했다. 한편 환경오염을 다스리려는 화학기술도 눈에 띄게 성장했다. 산업환경의 위기와 위기관리 모델이 동시에 대두하던 시대였다. 6장은 드디어 지구화의 시대다. 자급자족 규모를 넘어 대기업화한 농업 환경은 잡초·해충과 싸우려고 다량의 제초제와 살충제를 살포한다. 유한한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대규모 수력발전과 핵발전소가 제시됐다. 그러나 환경의 한계를 이겨내려고 인간이 고안한 방안은 다시 환경오염과 파괴를 일으키며 더 큰 문제를 낳았다.
전 지구적인 방식으로 환경오염이 일어나고 있지만, 저자는 지구 생태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환경정책 혹은 강력한 기관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는 지구를 서로 다른 작은 생태 시스템의 집합체로 보고, 인간과 자연의 구체적인 공생관계를 도모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규모 단위 안에서는 “통제와 자율의 조심스러운 공존이 가장 잘 기능”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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