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오는 것을 시시각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일행 셋 중 한 명이 먼저 섬에서 떠나 페리를 타야 했고, 다른 일행이 차로 그를 항구로 데려다주러 나갔다. 일어나서 기다란 방 끝에 난 창문을 바라봤다. 우리 ‘나름 중견’의 회사원 세 명이 잔 방은 좁다란 깔개를 3개 펴면 꽉 찼다. 2011년 9월, 여전히 여름인 밤은 덥고 끔찍하게 갈증 났다. 어제, 그래 어제.
엔화가 워낙 올랐는데도, 그냥 가자 해서 온 일본 오키나와다. 마지막 일정으로 이에지마섬에 들어왔다. 오키나와에 부속된 가장 큰 두 섬 중 하나다. 섬에는 먹을 곳도 만만찮을 터였고, 여행 끝 무렵이라 돈도 다 떨어졌다. 슈퍼에 들러서 있는 돈을 털었다. 여행서에서 가장 싼 곳으로 기록된 민박집으로 향했다.
뱃사람처럼 듬직한 아저씨가 2인용 방만 남았다 했고, 우리는 좋다고 했다. 예쁘게 생긴 아기 엄마가 숙박부를 꺼내주었다. 소박한 식사(술로 뭘 먹었는지 잊어버리는)를 시작하려는데 다이빙 슈트를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조개를 드시겠냐”고 했다. 요란스럽게 물은 것과는 달리 작은 접시에 몇 점을 갖다주고는 “자연에서 딴 진짜 조개”임을 강조했다. 곧 “문어도 드시겠냐” 했다. 문어 접시를 들고 온 남자는 자리에 앉은 뒤 면접 온 사람처럼 자기소개를 했다. 영어도 짧고 일어도 짧은 일행 셋은 알아들은 단어로 이 사람의 진심과 사실을 짜맞춰갔다.
어수선한 와중에 한 아저씨가 나타났다. 자신은 드라마 팬이며, 한국 사람들을 보니 정말 반갑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아저씨가 이 집의 주인이란다. 그럼 아까 뱃사람과 아기 엄마는? 질문을 들은 사람들은 낄낄댔다. 아저씨는 그냥 저쪽 동네 사람이고, 아기 엄마는 숙박객이란다. 좀 앉아 있으니 오토바이가 도착했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언니는 ‘염소’를 삶아왔노라며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저녁 다이빙을 하고 왔다며 얼굴이 새카맣게 탄 남자가 맥주팩을 들고 나타난다. 마셔도 마셔도 술이 계속 나타난다. 저녁에 도착해 섬을 제대로 구경 못했다 했더니 차를 타고 가잔다. 술을 안 마신 오토바이 언니가 차를 몰고 총 6명이 작은 차에 구겨타고 섬을 돈다. 화훼농가의 불빛을 지나 절벽 앞에 차를 멈추고 한밤중 물고기 잡는 불빛을 본다. 해안가에서 됫병 사케를 들이켠다. 을 들으며 함께 웃는다.
그랬으니 여름밤에 더해 목이 말랐다. 마당의 선풍기를 끌어오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던 목마른 밤이 밝아온다. 햇볕 들이치기 시작하는 창문을 여민 뒤 냉장고를 열고 마지막으로 남은 물을 잔에 따랐다. 물을 들이켜며 눈이 위로 향한 순간, 높은 천장에 달린 에어컨을 보았다.
그날 저녁, 그냥 저쪽 동네 아저씨가 큰 게를 중국풍으로 조렸고, 사치코상이 스시를 만들어주었고, 오늘도 가지 못한 데라다상과 오노상이 특선장 두 가지를 앞뒤로 발라 바닷장어를 숯불에 구웠다. 이에지마는 최선으로 서로를 먹여주는 곳이다.
구둘래 기자 디지털뉴스부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탄핵으로 나갔다 탄핵 앞에 다시 선 최상목…“국정 안정 최선”
물에 빠진 늙은 개를 건져주자 벌어진 일 [아침햇발]
윤석열 “2번, 3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니까 끌어내”…국회 장악 지시
“교수님, 추해지지 마십시오”…‘12·3 내란 옹호’ 선언에 답한 학생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안 가결…헌정사상 처음
“백령도 통째 날아갈 뻔…권력 지키려 목숨을 수단처럼 쓰다니”
“이재명·우원식·한동훈부터 체포하라” 계엄의 밤 방첩사 단톡방
조갑제 “윤석열 탄핵 사유, 박근혜의 만배…세상이 만만한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키운 한덕수, 대체 왜 그랬나
[전문] ‘직무정지’ 한덕수, 끝까지 ‘야당 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