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사람이 부릴 수 있는 모든 요술

만화가 조경규의
1970년대 서울 같기도
30년 뒤 서울 같기도 한 상하이
등록 2013-07-10 06:49 수정 2020-05-02 19:27
상하이는 너무나 거대해서 며칠 몇 달로는 다 경험하기란 불가능하다. 골목골목도 다 정겹고 즐겁다.한겨레 자료

상하이는 너무나 거대해서 며칠 몇 달로는 다 경험하기란 불가능하다. 골목골목도 다 정겹고 즐겁다.한겨레 자료

살면서 딱 두 번, 지상의 천국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중 하나가 중국 상하이의 밤거리였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거리의 조명이 뽀얀 오로라를 발산하고, 빌딩 꼭대기는 구름 위로 치솟아 있고, 넘실대는 각양각색의 네온사인 간판에 8차선 도로만큼이나 넓은 보행자 도로를 꽉 채운 사람들의 들뜬 표정까지, 나는 순식간에 그 도시의 분위기에 젖어버렸다. 안개를 비집고 낮은 소리로 쿵쿵거리는 음악의 베이스 소리에 이끌려 밤길을 거닐며, 연극 무대 세트 같기도 하고 야외 콘서트장 같기도 하고 영화 의 한 장면 같기도 한 그곳에서 정말 난 ‘이야~ 여기가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을 진심으로 했다.

난 자연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자연은 물론 좋지. 그렇지만 그랜드캐니언이나 무슨 폭포 같은 대자연을 앞에 두고 전혀 두근거리지 않았다. 그냥 뭐 사진이랑 똑같네 했다. 하지만 사람이 만든 도시는 얘기가 다르다. 바닥을 다지고 하나하나 돌을 쌓고 수십 층의 건물과 강과 바다를 잇는 기다란 다리와 색색의 화려한 전구가 달린 거리를 만든 솜씨를 보면 감탄에 감탄을 하게 된다. 갖은 솜씨로 만들어낸 요리를 맛보고 상품으로 가득한 대형마트를 둘러보는 재미도 대단하지. 사람이 부릴 수 있는 모든 요술이 상하이에 다 있다 싶었다.

그 뒤로도 상하이는 늘 마음의 고향이었다. 초현실적인 미래풍의 빌딩과 100년 된 서양 건물들이 같이 마주 보고 있는 그곳은 파란 하늘과도 잘 어울렸다. 선선한 봄이면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오전에 후미진 뒷골목을 쏘다니기도 하고, 무더운 여름이면 하루 종일 놀아도 시간이 부족할, 엄청난 규모의 쇼핑몰 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지냈다. 가을은 또 어떤가! 바야흐로 상하이 게의 계절 아니더냐. 그냥 쪄서 팔다리를 똑똑 부러뜨려 흑식초에 콕콕 찍어 먹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지. 살만 발라서 향긋한 기름에 새우와 볶기도 하고, 살과 알을 모아 만두소를 만들면 찰랑찰랑 즙이 가득해 그 여운이 입안에 오래 남는다. 차가운 겨울이면 오래된 찻집에 자리를 잡고 꽁꽁 언 정원의 호수를 바라보며 간단한 다과와 함께 뜨거운 차를 호로록호로록 마시는데, 굉장한 호강이지. 눈이 소복이 쌓인 기와의 풍경은 덤이고.

어쩌면 상하이가 서울과 닮아 더 정겨웠는지도 모른다. 도시 한복판에 제법 넓은 강이 흐르고 있어, 양쪽 강변에서 반대편을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삐죽삐죽 솟아오른 빌딩과 지하를 복잡하게 오가는 지하철에 출퇴근 시간의 심각한 교통체증까지 똑같다. 너무나 거대해 며칠 몇 달로는 도시를 다 경험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하루는 버스를 타고 잘 모르는 동네에 내려 한나절 걷기도 했는데, 골목골목이 다 정겹고 즐겁더라. 어떤 구석은 1970년대 서울 같고, 어떤 빌딩은 30년 뒤 미래 서울의 것 같기도 하다. 미확인비행물체(UFO)가 날아다녀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서울에서의 생활로부터 휴가가 필요할 때 카리브해의 청록빛 바다나 이국적 정취의 또 다른 어딘가를 꿈꿀 수도 있겠지만, 나는 보통 빌딩이 빡빡한 또 다른 도시를 떠올리곤 한다. 그 도시에 스며들어 그 시민들과 함께 아침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마트에서 쇼핑하고 편의점에서 군것질을 하면서 비슷한 듯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한 그네들의 삶에서 평안을 찾는다.

조경규 만화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