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녀석들은 팀장인 내가 놀고먹는 줄만 알 것이다, 라고 나는 이따금 의심한다. 물론 자격지심이다. 사회부에서 팀장을 맡은 지 여섯 달째, 그전보다 스트레스가 늘었다. 예전엔 내가 맡은 분야의 기사만 열심히 쓰면 됐는데, 이제는 남(이 아니라 팀원들)이 쓰는 기사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그들이 마감한 기사를 손봐서 넘겨야 한다.
오후 5시 안팎, 스트레스는 정점에 이른다. 죽음의 선(데드라인)을 이미 넘긴 기사가 인천상륙작전 때 연합군처럼 쇄도한다. 기사의 구성부터 문장, 오탈자에 이르기까지 ‘문자와의 격전’이 벌어진다. 수천~수만 글자들의 ‘떼공격’을 내가 당해낼 재간은 없다. 데스킹 과정에서 기사의 가치와 표현의 적절성을 두고 현장 기자와 연이어 짧은 논쟁이라도 벌이다보면, 결국 내 정신세계는 마젤란 은하와 안드로메다 은하 사이에서 헤매기 마련이다. 이런 일은 저녁 8시께 다시 한번 벌어진다.
이때 어디선가 ‘똑 또똑∼ 똑똑’ 모스신호가 들려온다. 집 나간 정신이 “나 여기 있어요”라며 찾으러 오라는 요청이다. 여지없이 발길을 돌린다. 회사 앞 술집 스핑크스의 문을 열며 “기본 주세요” 한다. 메뉴에 없는 메뉴지만, 사장님은 소주 1병에 맥주 2병 그리고 땅콩을 담은 접시까지 한 쟁반에 알아서 내온다. 맥주잔은 머릿수대로 나오는데, 소주잔은 늘 1개다. 폭탄용이다. 집 나간 며느리를 불러들이려면 전어를 구우면 되지만, 머리를 탈출한 내 정신은 소주와 맥주를 부드럽게 말아 혈중 알코올 농도를 높여주면 제 발로 찾아온다.
기분 내키면 안주로 한치를 한 접시 시킨다. 노가리는 금물이다. 명태새끼 소비를 촉진해봐야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명태포·동태전·동태탕·황탯국 먹기가 더 힘들어질 뿐이니까. 어차피 70∼80년 똥만 싸다 가는 인생, 후대에 끼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기본이다.
주위를 둘러본다. 긴 테이블 2개와 작은 테이블 5개는 저마다 작은 사연과 공장(우린 회사를 이렇게 부른다) 이야기들로 왁자지껄하다. 옆 테이블에서는 정상의 시사주간지 사람들이 도란거리고 “어떻게 나온 집인데 벌써 들어가냐”는 어느 선배의 알코올에 전 목소리가 뒤쪽에서 울려퍼진다. 다른 부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사교의 공간이 스핑크스다.
워낙 많은 이야기가 오가다보니, 우리끼리 이렇게 소곤거리곤 한다. “야, 정보기관이 한겨레 취재하려면, 여기 와서 일주일만 뻗치기하면 웬만한 건 다 들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사실 처음 보는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문에서 가장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 술을 홀짝거리는 모습을 종종 본다. 그럴 때는 예의주시하곤 하는데, 아직까지 별다른 혐의점은 발견한 적이 없다. 급기야 얼마 전엔 사장님에게 그들의 정체를 캐물었는데 “인근에 사는 단골 손님들”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이렇게 웃고 떠들다보면, 내 몸을 떠났던 정신이 어느새 제자리를 찾아와 다소곳이 앉아 있다. 이제 집에 가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옆에 있던 회사 동료와 다시 섞이고 기본이 기본을 부르다보면, 정신은 또 집을 나가 있다. 아뿔싸, 스핑크스는 정신의 기착지가 아니라 정류장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기어들어간 집에서 아침에 잠을 깨보면, 왜 간밤의 일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단 말이냐. 이렇게 매일 아침 팝듀오 왬의 <where did your heart go>를 부른다.
전종휘 사회부 기자 symbio@hani.co.kr
*‘마이 소울 시티’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좋은 글을 써주신 필자와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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