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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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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타향으로 느끼는 도시

존재 자체가 일종의 환상인 기묘한 이질감의 도시, 시인 이장욱의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등록 2013-06-15 19:16 수정 2020-05-03 04:27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아직 주둥이가 노란 미숙자이다. 모든 장소를 고향으로 느낄 수 있는 자는 이미 상당한 힘을 축적한 자이다. 하지만 전세계를 타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12세기 스콜라 철학자의 말이라고 한다. 매력적인 문장이다. 하지만 쓸쓸한 문장이기도 하다. 저 ‘완벽한 인간’에게는 고향도 없고 ‘소울 시티’ 같은 것도 없을 테니까. 전세계를 ‘타향’으로 느끼는 삶, 이질성만으로 이루어진 그런 인생에 영혼의 안식이 있을 리 없으니까. 그는 ‘완벽한 인간’이면서 동시에 불행한 인간임이 틀림없다.

페테르부르크에서 내가 보낸 시간은 1년 남짓, 나는 이 아름다운 바로크풍의 도시 뒷골목 하나하나를 다 기억할 수 있을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장욱 제공

페테르부르크에서 내가 보낸 시간은 1년 남짓, 나는 이 아름다운 바로크풍의 도시 뒷골목 하나하나를 다 기억할 수 있을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장욱 제공

페테르부르크에서 내가 보낸 시간은 1년 남짓으로, 사회주의가 막 무너진 뒤였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목적 없이 돌아다닌 시간으로만 따지면 보들레르가 배회하던 프랑스 파리에 견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한때 나는 이 아름다운 바로크풍의 도시 뒷골목 하나하나를 기억할 수 있을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석조건물들의 어두운 빛깔, 건물마다 조금씩 다른 문양, 무뚝뚝한 상점, 여기저기 흩어진 눈더미와 쓰레기, 북구 특유의 음울한 겨울 하늘, 사람들의 무거운 코트와 모자.

18세기 초 러시아 북서부의 습지에 건설된 이 중후한 인공도시는 도시 자체가 유럽의 중세도시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오리지널리티를 가지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다. 서양인 것도 아니고 서양이 아닌 것도 아닌 도시. 중세와 근대와 탈근대가 혼재하는 도시. 사회주의혁명의 승리와 좌절이 새겨진 도시. 1917년 볼셰비키혁명을 불러온 봉건 러시아의 기억과, 스탈린 시대 권위주의의 흔적과, 올리가르히(권력과 결탁한 독점자본가)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피폐가 공존하는 도시. 중세풍의 장엄한 건물들로 서서히 스며드는 다국적기업의 간판들. 부유하는 ‘포스트모던 중세’. 그게 페테르부르크다.

어쩌면 이 도시에서는 ‘시차적 배회’ 같은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중세의 산책자가 되어 포스트모던 도시를, 포스트모던의 배회자가 되어 전근대의 도시를 배회하는 것 말이다. 그러면 조금씩 알게 된다. 진실로 존재하는 듯하지만 “존재 자체가 일종의 환상”(니콜라이 고골)이라는 말의 의미를. 스스로를 ‘타향’으로 느끼는 이 도시 특유의 기묘한 이질감을. 정처 없는 배회자가 되어 뒷골목을 걷다보면, 밑도 끝도 없는 비관적인 생각에 시달리게 된다. 고향이란 떠난 자의 마음에서만 평화로운 건 아닌가. 안식이란 잠시 머물다 떠날 자의 영혼에만 허락되는 건 아닌가. 바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어디든 뜨거운 삶의 현장일 뿐이 아닌가.

그래서일까. ‘소울 시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게 거의 자동적으로 떠오른 것은 스스로를 ‘타향’처럼 느끼는 이 도시 페테르부르크였다. 아직 주둥이가 노란 미숙자로서, 내 두 발은 아직 이 음울한 ‘소울 시티’를 배회 중이니까.

이장욱 시인이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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