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아들이나 딸이나! 흥!

아들 낳은 맏며느리가 되다
등록 2012-03-22 19:54 수정 2020-05-02 04:26
google구글 선호 매체 등록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면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나는 하얀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앙앙 울고 있다. 주변에는 모두 하얀 옷을 입은 남자아이들이 기합에 맞춰 주먹을 내지른다. 태권도복이다. 대여섯 살밖에 안 된 여자아이 손을 잡고 태권도장을 찾은 이는 할아버지였다. 맏아들이 딸만 셋을 줄줄이 낳자 상심하셨던 할아버지는 그중 둘째, 나를 아들답게 키워보려 애쓰셨다.
“생긴 것도 행동하는 것도 아들인데 고추만 안 달고 태어난” 나는, 그러나 태권도장에 들어서자마자 울음을 터뜨려 할아버지를 실망시켰다. 난처해진 관장님은 작은 의자 하나를 꺼내와 나를 앉혔다. 태권도장을 다닌 한 달 내내 나는 그 의자에 앉아만 있었다. 나의 태권도 인생은 그렇게 흰띠에서 끝이 났다.

어린 시절 필자(맨 왼쪽)와 자매들.

어린 시절 필자(맨 왼쪽)와 자매들.

태권도는 어찌 피해갔지만 딸내미로 살며 울음으로도 회피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았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 밑으로 줄줄이 시동생·시누이들을 돌보고 병든 시아버지 수발까지 해야 했던 엄마는, 그러나 그 모든 고생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댁 식구들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런 엄마가 안쓰러워 우리 세 자매는 명절이나 제사 때면 누구보다 열심히 집안일을 도왔다. 그런 우리를 보며 친척들은 “이 집은 딸이 많아 일손이 넉넉하다”고 좋아하면서도 돌아서며 “그러게 아들 하나만 더 있으면 얼마나 좋아…”라는 말로 깊은 상처를 주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스트레스로 가슴이 답답해지는 명절증후군은 어린 시절부터 내게 친숙했다.

스무 살 즈음이 되자 난 모든 ‘딸내미의 숙명’과 그만 안녕을 고하고 싶어졌다. 더 이상 가부장제 사회가 바라는 대로 살아주기 싫어졌다. 결혼과 출산도 그중 하나였다.

“아기가 아빠를 닮았네요.” 임신 후반기, 산부인과 의사가 넌지시 내게 이 말을 건넨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아들, 아들이다.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우리 부모님이 그토록 원하시던 아들이다. 그 아들을, “아이를 낳지 않겠다”던 내가 덜컥 가졌다. 옆에서 “나는 딸이 좋다”며 아쉬워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아들이 좋아. 아들을… 한번 낳아보고 싶었어.”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아들이래.” “그래? 아이고, 잘됐네. 축하한다!” 축하한다는 말을 듣는데 목이 메었다. 시부모님께도 전화를 했다. 시아버님은 아들이라는 말에 딱 한마디를 하셨다. “고맙다.” 시댁은 워낙 아들 부잣집이라 오히려 딸이 귀하다. 그런데도 시어머님은 말씀하셨다. “맏이인 너희가 낳는 아들은 다르다”고.

가부장제 사회가 원하는 대로 살아주지 않겠다던 스무 살 여자아이는 이제 서른이 넘어 결혼을 했고 맏며느리가 됐고 아이까지 가졌다. 그것도 아들을 가져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고 말았다. 이제는 오히려 딸이 대세라는 시대, 나는 아들을 키우며 무엇을 느끼고 배울 수 있을까. 어쨌든 이 아이를 낳아 키우고 마침내는 세상에 이렇게 외치고 싶다. 아들이나 딸이나! 흥!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