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와 이토의 (북폴리오 펴냄) 같은 식당을 차리고 싶다. 달팽이 식당은 하루에 한 팀의 손님만 받는다. 그러니 테이블도 하나, 요리하고 서빙하는 사람도 한 명뿐이다. 정해진 메뉴는 없다. 미리 손님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그가 가진 사연과 취향을 철저히 조사한 뒤 상황에 맞춤한 요리를 내놓는다. 이와 비슷한 식당이 서울에도 이미 몇 곳 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다닥다닥 붙어 앉은 손님으로 복작거리거나 정신없이 음식을 해대야 할 정도로 긴 줄이 늘어서는 가게를 가진다면 돈이야 주머니로 쏟아져 들어오겠지만, 그건 마감에 쫓기는 목·금요일 같은 나날을 매일매일 살아야 한다는 뜻! 자의로든 타의로든 끊임없이 다그치는 일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손님이 없는 날은 하루 종일 가게를 지키며 느긋하게 나를 위한 음식을 차리고 그 공간을 통째 빌린 손님인 듯 여유롭게 밥 먹고 차 마시고 책을 읽다가 문 닫고 퇴근하고, 예약이 있는 날은 종일 한 손님만을 위한 식탁을 준비하며 보내야지(라고 말하면 엄마에게 또 물정 모른다는 소리나 듣겠지).
달팽이 식당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 찾는 공간이다. 요리를 하는 링고부터가 그렇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링고를 맞이하는 것은 텅 빈 집이었다. 함께 살던 연인이 돈과 재산, 살림살이를 전부 가지고 사라진 것이다. 깊은 신뢰가 배신감으로 바뀌는 순간, 링고는 말을 잃었다. 실어증에 걸린 링고는 고향으로 돌아가 식당을 열기로 마음먹는다. 그곳에서 그는 손님들과 필담을 나누며 그들의 사연을 듣고 가만가만 상처를 보듬는다. 그리고 종종 동화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아르헨티나인 아내 시뇨리타가 딸을 데리고 가출한 다음 달팽이 식당 일을 돕던 구마씨는 링고가 차려준 석류 카레가 그날따라 왠지 특별했는데, 그걸 먹은 다음날 기다리던 딸과 아내가 돌아왔다. 오래전에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해 줄곧 상복을 입고 다니는 할머니에게는 “할머니 속에서 가사 상태가 된 세포들을, 자명종 소리처럼 다시” 깨울 수 있는 요리를 준비했다. 단 것은 제대로 달고, 매운 것은 제대로 매운, 희로애락을 표현하듯 강약의 장단을 맞춘 음식들로. 개다래나무주를 사용한 칵테일, 굴과 옥돔 카르파초, 삼계탕, 유자 셔벗, 진한 에스프레소…. 음식을 만들고 차리고 할머니가 먹기까지를 담은 문장들이 10쪽 분량으로 빼곡히 이어진다. 할머니는 그 정성스런 과정을 거치고, 다음날 드디어 상복을 벗었다.
침이 고인다. 낯익거나 낯선 이름의 요리가 줄지어 등장한다. 특별한 기억이 있는 음식 앞에서는 문장을 따라가던 걸음을 멈추게 된다. 예컨대 스치듯 등장한 피시 소스를 곁들인 월남쌈 앞에서는 월남쌈을 유달리 잘 만들고, 자주 만들었던 언니 진이 생각난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만난 일본 남자와 사랑에 빠져 1년여 원거리 연애를 하다 결국 결혼해 오스트레일리아로 날아가 살림을 꾸렸다. 서로 상대방의 언어는 할 줄 몰라 의사소통은 오로지 영어로만 가능했는데, 눈도 맞추지 못하고 짧은 영어로 전화 통화를 하면서도 그들은 이심전심했다. 한 남자를 8년 동안 검증하고서야 겨우 결혼을 마음먹을 수 있었던 나로서는 그런 사랑도 가능한가 싶었는데, 그들은 잘 산다. 행복하게.
링고는 내 앞에 월남쌈을 차려주며 잊고 지내던 사람을 불러내주었다. 더불어 그와 친하게 지내던 시절 좋았던 기억도. 팽팽하게 각져 있던 마음이 한 번 둥글려지는 느낌이다. 책의 결말은 내용에서 짐작되는 대로 해피엔딩이다. 그렇게, 밥상을 차리며 손님과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가운데 링고 자신의 상처도 희미하게 아물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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